야근의 끝, 입술의 시작

Chapter 1 — 야근의 끝, 입술의 시작

귓가에 날카롭게 울리는 셔터 소리에, 두예린은 눈을 떴다. 섬광처럼 터지는 플래시, 렌즈 너머로 쏟아지는 욕망과 조롱이 뒤섞인 시선들. 여기가 어디였더라… 아, 결혼식장.

정신이 아득해지는 와중에도 두예린은 기억해냈다. 재벌, 그 중에서도 손꼽히는 거물인 서강준과의 정략결혼. 사랑 없는 결혼 따위 꿈꿔본 적도 없지만, 이건 너무 심했다. 마치 상품처럼 전시된 기분. 아버지의 회사를 살리기 위해 팔려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신부 입장!”

사회자의 우렁찬 외침이 귓가를 때렸다. 두예린은 로봇처럼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드레스 자락이 무겁게 짓눌러왔다. 마치 그녀의 어깨를 짓누르는 현실의 무게처럼.

서강준은 단상 위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조각처럼 빚어놓은 듯한 완벽한 외모였지만, 그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마치 그녀를 혐오하는 듯한 눈빛. 두예린은 숨을 멈췄다.

결혼식은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주례사는 뻔한 덕담을 늘어놓았고, 하객들은 형식적인 축하를 건넸다. 두예린은 그 모든 순간을 숨 막히는 고통 속에서 견뎌냈다.

폐백이 끝나고, 두예린은 서강준의 방으로 안내되었다. 방은 텅 비어 있었다. 며칠 전, 딱 한 번 그와 마주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는 그녀에게 차갑게 말했다.

“착각하지 마. 이건 비즈니스일 뿐이야. 당신에게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하지 않아.”

두예린은 그 말을 곱씹으며 씁쓸하게 웃었다. 기대? 애초에 기대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아버지의 회사를 살릴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저녁 식사 시간입니다.”

문이 열리고, 집사가 정중하게 말했다. 두예린은 무거운 몸을 일으켜 식당으로 향했다. 긴 테이블 끝에 서강준이 앉아 있었다. 그의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두예린은 조용히 맞은편에 앉았다.

식사 시간 내내 정적이 흘렀다. 포크와 나이프가 접시에 부딪히는 소리만이 텅 빈 공간을 채웠다. 서강준은 식사에 집중하며 두예린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서강준이 입을 열었다.

“오늘 밤, 스케줄이 있어.”

두예린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다.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있어. 어차피 당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니까.”

서강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두예린은 홀로 남겨진 식탁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상관없는 일? 부부에게 상관없는 일이란 대체 뭘까. 그의 싸늘한 태도에 가슴 한구석이 저릿하게 아파왔다.

밤이 깊어갈수록 불안감이 커져갔다. 서강준은 새벽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두예린은 초조하게 거실을 서성이며 창밖을 바라봤다. 그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두예린은 반사적으로 문 쪽으로 달려갔다.

서강준은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팔짱을 끼고 있었다. 여인은 두예린을 쏘아보며 도발적인 미소를 지었다.

“오빠, 이 분이 누구시죠? 설마… 가정부?”

서강준은 여인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차갑게 대답했다.

“신경 쓸 필요 없어. 그냥… 내 그림자일 뿐이야.”

두예린은 충격에 휩싸였다. 그림자? 그녀는 그의 아내가 아니었던가. 서강준의 냉정한 눈빛은 두예린의 마지막 희망마저 짓밟아버렸다. 그 순간, 여인이 두예린에게 속삭였다.

“잘 지내봐요, 그림자 신부님.”

그리고, 여인은 서강준에게 진한 키스를 퍼부었다. 두예린의 눈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