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한 제안
Chapter 1 — 아찔한 제안
“서류상으로만 결혼해요, 사공린 씨.”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내 심장을 꿰뚫는 듯했다. 다진솔, DK 그룹의 후계자이자, 내가 몇 년 동안 짝사랑해 온 남자. 그가 내게 ‘계약 결혼’을 제안하다니. 드라마에서나 보던 일이 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다진솔은 내 맞은편 소파에 앉아, 완벽하게 다려진 슈트 차림으로, 흐트러짐 하나 없는 모습이었다. 그의 얼굴은 조각처럼 잘생겼지만, 왠지 모르게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의 눈빛은 깊고 차가웠다. 과거, 내가 알던 따뜻한 미소를 찾아볼 수 없었다.
“왜… 저인가요?”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려 애썼다. 솔직히 말하면, 그가 나를 찾았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 DK 그룹은 대한민국 경제를 좌우하는 대기업이고, 나는 그저 평범한 회사원일 뿐이었다.
다진솔은 잠시 침묵했다. 그의 시선은 내 얼굴을 훑고 지나갔다. 마치 무언가를 평가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 시선에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사공린 씨가 필요해요.”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간결했지만, 의미심장했다. “저에게는 시간이 없어요. 다른 사람을 알아보고, 설득할 여유도 없고요. 사공린 씨라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그의 말에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시간이 없다니, 무슨 의미일까? 그리고 왜 하필 나였을까? 우리는 대학교 동기였지만, 깊은 관계는 아니었다. 그저 몇 번 함께 수업을 듣고, 가끔씩 인사를 나누는 정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계약을 말씀하시는 거죠?”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의 제안이 위험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그를 도울 수 있다면… 하는 작은 희망도 품고 있었다.
“2년. 2년 동안, 저와 부부 행세를 하는 거예요.” 다진솔은 단호하게 말했다. “물론, 서류상으로만요. 그 외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을 겁니다.”
2년이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그의 아내 역할을 해야 한다. 그의 가족들에게, 그의 친구들에게, 그리고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상상만으로도 숨이 막히는 일이었다.
“조건은요?” 나는 현실적인 질문을 던졌다. 감정에 휘둘릴 때가 아니었다. 계약 결혼은 엄연한 ‘거래’였다. 나는 그 대가를 알아야 했다.
“충분한 보상을 약속하죠.” 다진솔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사공린 씨가 원하는 건 뭐든지.”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의 제안은 달콤했지만, 위험했다. 그의 눈빛은 차가웠지만, 어딘가 슬픔이 엿보였다. 나는 그에게 끌리고 있었지만, 동시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나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이건…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요.”
다진솔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하지만 시간은 많지 않다는 걸 기억해 줬으면 해요.”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일 저녁까지 답을 줘요, 사공린 씨.”
그는 나를 지나쳐 방을 나갔다. 나는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의 그림자가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을, 그리고 내 심장이 점점 더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다음 날, 나는 회사에서 끔찍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구조조정 대상자 명단에 내 이름이 올라 있었다. 몇 년 동안 묵묵히 일해 온 나를, 회사는 너무나 쉽게 버릴 수 있었다. 절망감에 휩싸인 채 퇴근하던 길, 나는 다진솔에게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사공린 씨, 내일 저녁 7시에 DK 타워 로비에서 기다리겠어요.”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지만, 어딘가 다급함이 느껴졌다.
나는 망설였다.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할까? 아니면, 내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야 할까?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나는 회사를 잃었고, 미래는 불투명했다. 그의 제안은 어쩌면, 내게 주어진 유일한 기회일지도 몰랐다.
다음 날 저녁, 나는 약속 장소인 DK 타워 로비로 향했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나의 인생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까?
로비에 들어선 순간, 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다진솔은 한 여자와 격렬하게 키스하고 있었다. 그 여자는… 다름 아닌, 내 직장 상사인 오재원 부장이었다.
나는 충격에 휩싸여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다진솔과 오재원 부장, 이 두 사람은 대체 무슨 관계인 걸까? 그리고… 나는 왜 이 모든 것을 목격하게 된 걸까?
다진솔은 키스를 멈추고, 나를 발견한 듯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빛은 당황스러움과 죄책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나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그리고 나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순간, 오재원 부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머, 사공린 씨? 이런 데서 다 보네. 혹시… 다진솔 씨 만나러 왔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차갑고 비웃는 듯했다. “착각하지 마세요. 다진솔 씨는… 내 남자친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