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선 넘지 마세요!

Chapter 1 — 선배, 선 넘지 마세요!

알람 소리에 겨우 눈을 뜬 변채린은 뻐근한 목을 주무르며 시계를 확인했다. 7시 정각. 어제 팀 회식에서 얼마나 마셔댔던가. 숙취 해소제 덕분에 그나마 이 정도인 게 다행이었다.

“젠장… 또 지각하면 진짜 짤릴지도 몰라.”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뛰쳐나온 변채린은 택시를 잡기 위해 손을 흔들었다. 강남의 아침은 언제나처럼 분주했다. 대기업 ‘KL그룹’의 신입사원인 그녀에게는 매일이 전쟁 같은 하루의 시작이었다. 특히 악명 높은 인사팀에 배치된 후로는 더욱 그랬다.

KL그룹 본사 건물은 강남 테헤란로에 우뚝 솟아 있었다. 유리 외벽은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변채린은 숨을 헐떡이며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지각은 면했지만, 아슬아슬했다.

엘리베이터 안,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점검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덜 마신 커피 자국이 남은 셔츠. 완벽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숨을 쉬며 옷매무새를 다듬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스쳤다.

“변채린 씨, 오늘도 늦었네?”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는 인사팀의 ‘악마’라 불리는 한태민 팀장이 서 있었다. 날카로운 눈매, 차가운 표정. 그는 언제나 완벽했고, 변채린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죄송합니다, 팀장님. 늦잠을 자서…”

변채린은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의 시선이 그녀의 셔츠에 멈추는 것을 느꼈다.

“KL그룹 인사팀 직원이 용모 단정하지 못한 모습으로 출근하다니. 실망이 크군.”

한태민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날카로운 칼날처럼 변채린의 심장을 찔렀다. 그는 늘 이런 식이었다. 사소한 실수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완벽주의자인 그의 눈에, 변채린은 늘 부족한 존재였다.

“오늘 당장 경위서 작성하고, 다음부터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한태민은 먼저 걸어 나갔다. 변채린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한태민 팀장’ 그는 변채린에게 넘어야 할 산이자, 동시에… 떨쳐낼 수 없는 설렘의 대상이었다.

그녀는 대학교 시절부터 그를 짝사랑해왔다. 냉철하고 완벽한 모습 뒤에 숨겨진 따뜻함과 인간적인 매력에 빠져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는 늘 철벽이었고, 변채린의 마음은 닿을 수 없는 곳에 머물러 있었다.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변채린은 묵묵히 그의 뒤를 따랐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그녀의 자리에는 산더미 같은 서류가 쌓여 있었다. 오늘 하루도 야근 확정이었다.

“변채린 씨, 잠깐 내 방으로 들어와.”

한태민의 차가운 목소리가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변채린은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다. 또 무슨 일일까. 불안한 마음으로 팀장실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선 팀장실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짙은 향수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한태민은 창밖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의 뒷모습은 늘 그랬듯, 차갑고 완벽해 보였다.

“경위서는 제출했겠지?”

“아… 아직입니다. 죄송합니다, 팀장님. 최대한 빨리 작성해서 제출하겠습니다.”

변채린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대답했다. 한태민은 천천히 몸을 돌려 변채린을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지만, 어딘가 모르게 슬픔이 느껴졌다.

“변채린 씨, 내가 몇 번이나 말했지? KL그룹 인사팀은 완벽해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팀장님. 앞으로는 절대 실수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변채린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한태민은 한숨을 쉬며 책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 변채린에게 건넸다.

“이거 받아.”

그것은 다름 아닌, 고급스러운 넥타이였다. 변채린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팀장님, 이건…”

“오늘 저녁, 그룹 회장님 만찬에 나랑 같이 가게.”

한태민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변채린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회장님의 만찬이라니, 그것도 팀장님과 함께?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저… 제가 왜…”

“네가 필요해, 변채린 씨.”

한태민의 눈빛이 갑자기 깊어졌다. 그의 시선은 변채린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변채린은 심장이 터질 듯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한태민이 한 걸음 다가왔다.

“이번 만찬, 내 약혼녀 역할이 필요해.”

변채린은 숨을 멈췄다. 약혼녀 역할이라니…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일까? 그녀의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 찼다.

“거절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한태민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변채린을 바라봤다. 그녀는 그의 푸른 눈동자 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마치 깊은 늪에 빠진 것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과연 변채린은 이 위험한 제안을 받아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