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의 자격

Chapter 1 — 비서의 자격

“사표는 안 됩니다, 김비서.”

낮게 울리는 음성이 귓가를 간지럽혔다. 서류 더미에 파묻혀 있던 하율은 견지안 부회장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빛은 마치 맹수처럼 하율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견지안은 대한민국 경제를 좌우하는 SJ 그룹의 후계자였다. 냉철하고 완벽주의적인 성격으로 악명 높았지만, 그의 매력적인 외모는 수많은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율은 3년 동안 그의 곁을 지키며 그의 모든 면을 꿰뚫고 있었다. 그의 냉철함 뒤에 숨겨진 고독과, 완벽을 추구하는 강박적인 면모까지.

“부회장님, 갑작스러운 말씀은….”

하율은 당황스러움을 감추며 침착하게 답했다. 사표를 제출한 지 불과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그의 귀에 들어갔다니. 역시 SJ 그룹의 정보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녀가 사표를 낸 이유는 단순했다. 지긋지긋한 야근과 주말 출근, 그리고 무엇보다 견딜 수 없는 것은 견지안, 그 남자였다. 처음에는 존경심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하율의 마음속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닿을 수 없는 별을 쫓는 것 같은 감정은 그녀를 지치게 만들었다. 그래서 떠나기로 결심한 것이다.

“김비서, 자네가 없으면 누가 내 스케줄을 완벽하게 관리하고, 내 까다로운 성격을 맞춰주겠나?”

견지안은 하율의 책상 앞으로 다가와 섰다. 그의 짙은 눈썹이 살짝 찡그려졌다. 그는 진심으로 하율의 사표를 만류하는 듯했다. 하지만 하율은 그의 진심을 믿을 수 없었다. 그는 언제나 이성적이고 냉철한 사람이었으니까. 감정적인 동요 따위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의 말은 그저 업무적인 필요에 의한 것일 뿐이라고 하율은 생각했다.

“송구스럽습니다, 부회장님. 하지만 저는….”

하율은 입술을 깨물며 말을 이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수많은 감정들이 뒤섞여 있었다. 견지안에 대한 애틋함, 그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간절함,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함. 하지만 그녀는 결심했다. 더 이상 그의 곁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단호하게 말했다.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습니다.”

견지안은 하율의 단호한 태도에 잠시 멈칫했다. 그의 눈빛이 더욱 깊어졌다. 그는 하율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새로운 시작? 설마… 스캔들 때문인가?”

하율은 견지안의 입에서 ‘스캔들’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화들짝 놀랐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스캔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그녀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움으로 가득 찼다. 견지안의 의미심장한 미소가 그녀의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바로 그 순간,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고 주하린이 들어왔다. 주하린은 SJ 그룹의 외동딸이자, 견지안의 약혼녀였다.

“오빠, 아직도 여기 있었네? 저녁 식사 예약해 뒀는데… 어머, 김비서도 있네?”

주하린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견지안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어딘가 차가웠다. 주하린은 하율을 경계하는 듯했다. 하율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주하린의 등장에 안도하면서도, 동시에 더욱 불안해졌다. 견지안, 주하린, 그리고 주하린. 세 사람의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까?

“주하린아, 마침 잘 왔네. 김비서가 사표를 냈다고 해서 말이야.”

견지안은 주하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하율은 어딘가 불편함을 느꼈다. 그는 왜 주하린 앞에서 하율의 사표 이야기를 꺼내는 걸까? 그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주하린은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평정을 되찾았다. 그녀는 하율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머, 정말요? 김비서, 갑자기 무슨 일이에요?”

하율은 주하린의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었다. 그녀는 견지안과 주하린의 시선을 피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때, 견지안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김비서, 솔직하게 말해봐. 정말 스캔들 때문에 사표를 내는 건가?”

견지안의 질문에 하율은 숨을 멈췄다. 스캔들? 그는 대체 무엇을 알고 있는 걸까? 그녀는 견지안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바로 그때, 견지안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휴대폰 화면을 확인하더니, 굳은 표정으로 하율을 바라봤다.

“김비서, 큰일 났어. 네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