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첫 단추
Chapter 1 — 엇갈린 첫 단추
눈을 뜬 순간, 낯선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익숙한 나의 낡은 자취방이 아니었다. 고급스러운 샹들리에, 은은한 조명, 그리고 무엇보다 믿을 수 없었던 것은… 화려한 레이스가 달린 공주풍 침대였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왔다. 마지막 기억은 분명 5년 동안 몸담았던 회사, ‘태성 그룹’의 끔찍했던 송년회였다. 강 전무의 술잔을 억지로 받아 마시고, 비틀거리며 택시를 탔던 것까지는 기억이 났다. 그 후로는 필름이 끊긴 듯했다.
“아가씨, 괜찮으세요?”
나지막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중년의 여성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짙은 눈썹, 단정한 쪽진 머리. 분명 집에서 일하는 가정부였다. 하지만 어째서 나를 ‘아가씨’라고 부르는 거지?
“여기가… 어디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여자는 당황한 듯 눈을 깜빡였다. “아가씨, 여기는 당연히 아가씨의 방이잖아요. 무슨 일이 있으셨어요? 혹시… 어제 회장님과의 다툼 때문에 그러시는 건가요?”
회장님? 다툼? 머릿속이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나는 평범한 회사원, 박소현이었다. 회장님이라니,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단어였다. 그런데 왜 이 여자는 나를 ‘아가씨’라고 부르며, 회장님과의 다툼을 운운하는 걸까. 이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저… 박소현인데요. 혹시 잘못 아신 건 아니세요?”
여자의 얼굴이 더욱 굳어졌다. “아가씨, 농담도 지나치세요. 아가씨는 태성 그룹 외동딸, 윤세아시잖아요.”
윤세아? 태성 그룹 외동딸?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윤세아는… 내가 5년 동안 몸담았던 태성 그룹 회장의 외동딸이자, 모두가 선망하는 완벽한 ‘금수저’였다. 나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내가 윤세아가 된 거지?
황급히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대로 향했다.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크고 맑은 눈, 오뚝한 콧날, 앵두 같은 입술. 분명 윤세아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혼란과 당혹감은 분명 박소현의 것이었다.
손이 떨려왔다. 꿈일까? 아니면 미친 걸까? 뺨을 꼬집어 봐도 아픔만이 느껴졌다. 현실이었다. 내가 윤세아가 되어버린 현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걸까.
혼란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방 안을 둘러보았다. 화려한 가구들, 고급스러운 소품들. 윤세아의 취향이 고스란히 담긴 방이었다. 책상 위에 놓인 달력이 눈에 띄었다. 2018년 5월 15일. 나는 5년 전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그것도 윤세아라는 전혀 다른 사람의 몸으로.
심장이 쿵쾅거렸다. 5년 전… 그때는 아직 태성 그룹에 입사하기 전이었다. 윤세아와는 단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왜 하필 윤세아의 몸으로 돌아온 걸까. 그리고 이 회귀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갑작스러운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5년 후, 윤세아는 불행한 결말을 맞이했다. 정략결혼, 남편의 외도, 그리고 끝없는 고독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윤세아의 삶을 동경하면서도 동시에 안타까워했었다.
어쩌면… 신은 내게 기회를 준 것인지도 모른다. 윤세아의 삶을, 그리고 내 삶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5년 후의 비극을 막고,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하지만 그 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지금의 나는 박소현이 아닌 윤세아였다. 태성 그룹 회장의 딸로서, 화려하고 복잡한 삶을 살아가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5년 전의 예동하와의 관계를 다시 정립해야 했다.
예동하… 그는 태성 그룹의 후계자이자, 윤세아의 정혼자였다. 5년 후, 윤세아는 예동하와의 불행한 결혼 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5년 전의 예동하는… 아직 어린 시절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채, 냉소적인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남자였다.
나는 윤세아로서, 예동하와의 관계를 다시 시작해야 했다.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고, 그와 진정으로 소통하고 이해해야 했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윤세아로서의 삶에 적응해야 했다.
그때, 방문이 벌컥 열리며 한 남자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짙은 눈썹, 날카로운 콧날, 차가운 눈빛. 예동하였다. 5년 전의, 아직 상처 입은 늑대 같은 모습의 예동하.
“세아야, 너… 또 무슨 짓을 하려고.” 그의 입에서 나온 차가운 목소리가, 얼음처럼 날카롭게 심장을 찔렀다. 그는 마치 내 속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그리고 그의 다음 말은, 나를 더욱 혼란에 빠뜨렸다.
“네가 어제저녁에 한 말, 후회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