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약혼

Chapter 1 — 위험한 약혼

“탁민재 씨,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선우진이 내게 매달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5년 전, 대학교 캠퍼스에서 빛나던 그녀는 어디에도 없었다. 대신 절박함과 두려움에 질린 여자가 내 앞에 서 있었다. 한때 내 심장을 뛰게 했던 여자의 몰락이라니, 아이러니였다.

“무슨 일이야, 선우진 씨?”

나는 최대한 냉정한 목소리를 유지하며 물었다. 감정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특히, 선우진 앞에서는.

“저… 아버지 빚 때문에, 국 회장님께 팔려갈 위기에 처했어요.”

그녀의 말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국 회장이라면 악명 높은 태성 그룹의 국승빈 회장을 말하는 것일 터였다. 돈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괴팍한 노인. 선우진이 그의 눈에 띄다니 불운도 이런 불운이 없었다.

“그래서, 나에게 뭘 해달라는 거지?”

“저와… 가짜 약혼을 해주세요! 국 회장님께 다른 약혼자가 있다고 하면, 포기하실 거예요.”

가짜 약혼이라… 터무니없는 제안이었지만, 어쩐지 거절할 수 없었다. 5년 전, 그녀에게 차갑게 버려졌던 기억이 떠올랐지만, 지금 그녀의 절박한 눈빛은 그때와는 너무나 달랐다. 게다가 나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태성 그룹과의 사업 확장을 위한 발판, 그리고… 5년 전의 복수.

“가짜 약혼에는 조건이 필요하겠지.”

내 말에 선우진은 희망이 섞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물론이에요! 원하시는 건 뭐든지… 돈이든, 뭐든!”

“돈은 필요 없어. 대신…”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속삭였다. “내 밑에서 3년 동안 철저하게 ‘을’이 되는 거야. 내 모든 명령에 복종하고, 내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해.”

선우진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그녀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보며, 나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5년 전의 빚을 갚아줄 시간.

“생각해볼 시간을 줄게. 하지만 시간은 많지 않아. 국 회장이 널 데려가기 전에 결정해야 할 거야.”

나는 등을 돌려 사무실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때, 선우진이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알겠어요… 할게요! 탁민재 씨, 당신의 조건을 받아들일게요!”

나는 멈춰 서서 뒤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생각했다. 후회하게 될 거야, 선우진. 네가 내린 결정, 분명 후회하게 될 거라고. 하지만… 나 역시 후회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며칠 후, 우리는 국승빈 회장 앞에서 약혼 발표를 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사랑에 빠져 결혼을 결심했다고 믿겠지만, 사실 우리는 서로를 증오하는 계약 관계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계약은 생각보다 훨씬 더 위험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국 회장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선우진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선우진 씨, 탁민재 씨는 모르는 당신의 비밀… 내가 알고 있다는 거, 알고 있겠죠?”

선우진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국 회장을 노려봤지만, 그의 눈빛은 조롱으로 가득 차 있었다. 대체 선우진은 무슨 비밀을 숨기고 있는 걸까? 그리고 그 비밀은 왜 국승빈 회장의 손에 있는 걸까? 계약 결혼은 시작부터 예상치 못한 파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