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결혼 행진곡
Chapter 1 — 재의 결혼 행진곡
피아노 건반 위로 핏방울이 튀었다. 검은색 광택 위에 붉은 얼룩이 번져나갔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엉망으로 망가진 손으로 필사적으로 쇼팽의 장송 행진곡을 연주하는 나의 모습이라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었다.
“그만해, 빙서하!”
귓가에 울리는 안지호의 절규 섞인 목소리. 그는 언제나처럼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 속에는 희미한 슬픔이 어려 있었다. 내가 그토록 갈망했던 감정. 그러나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일까.
나는 멈추지 않았다. 손가락이 부러지는 고통 속에서도 건반을 두드렸다. 이 처절한 멜로디가 그의 심장을 꿰뚫기를, 그래서 그 역시 나와 같은 고통을 느끼기를 간절히 바랐다. 우리의 결혼식은 이미 엉망가 되어 있었다. 하객들은 모두 도망치듯 식장을 빠져나갔고, 샹들리에 조명 아래에는 나와 안지호, 그리고 싸늘하게 식어가는 아버지의 시신만이 남아 있었다.
“왜…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그의 외침에는 절망이 묻어났다. 나는 차갑게 웃으며 답했다.
“내가 왜 이러는지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안지호, 당신은 내 인생을 망쳤어. 당신과 당신 아버지가… 우리 가족을 파멸시켰다고!”
5년 전, 우리는 서로 사랑했다. 가난했지만 아름다웠던 시절. 안지호는 재벌 그룹의 후계자였지만, 신분을 숨긴 채 평범한 대학생으로 살고 있었다. 우리는 캠퍼스 커플로 만나 뜨겁게 사랑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우리의 관계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권력을 이용해 우리 가족의 사업을 무너뜨리고,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내게는 선택지를 제시했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그의 아들인 안지호와 결혼하라고.
나는 복수를 택했다. 사랑했던 남자를 증오하며, 그의 아내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5년 동안, 나는 철저하게 그의 가면을 쓴 채 살아왔다. 그의 곁에서 그의 약점을 파고들었고, 마침내 복수의 날을 맞이했다. 결혼식 날, 나는 안지호의 아버지, 강 회장의 비리를 폭로했다. 그의 죄를 세상에 알리고, 그를 파멸시키려 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강 회장이 심장마비로 쓰러진 것이다. 그리고 그 충격으로,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났다.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다. 복수는 성공했지만, 내 안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절망과 후회, 그리고 사무치는 고통만이 나를 짓눌렀다. 나는 그대로 피아노에 엎드려 울었다. 안지호는 다가와 나를 끌어안았다. 그의 품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이제 그 온기는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빙서하야… 이제 그만해. 모든 걸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자.”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의 품에서 벗어나 차갑게 쏘아보았다.
“다시 시작하자고? 우리가 어떻게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당신과 나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어.”
나는 마지막 힘을 짜내 피아노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드레스 자락을 움켜쥐고, 식장 문을 향해 걸어갔다. 안지호는 나를 붙잡으려 했지만, 나는 뿌리쳤다. 더 이상 그의 손길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식장 문을 열고 나선 순간, 강렬한 빛이 나를 덮쳤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빛이었다. 그리고… 굉음과 함께, 모든 것이 암흑으로 잠식되었다.
눈을 떴을 때, 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낯익은 천장, 낡은 벽지, 그리고 오래된 책상. 이곳은…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살았던 자취방이었다. 20살의 빙서하, 5년 전의 과거로 돌아온 것이다. 책상 위에는 낡은 핸드폰이 놓여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에는 ‘안지호’이라는 이름과 함께, 발신자의 사진이 떠 있었다. 심장이 멎을 듯 격렬하게 요동쳤다. 나는 망설였다. 이 전화를 받아야 할까, 아니면… 이번에는 다른 선택을 해야 할까. 그 순간, 전화가 끊어졌다. 그리고 곧바로, 메시지가 도착했다. [빙서하야, 오늘 저녁 7시, 강남역 7번 출구에서 보자.]
나는 메시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안지호… 그는 왜 5년 전의 나와 같은 약속을 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나는… 이 운명을 어떻게 바꿔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