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루프 속 그녀의 미소

Chapter 1 — 타임루프 속 그녀의 미소

잿빛 하늘 아래, 타들어 가는 웨딩드레스 자락을 멍하니 바라봤다. 순백색이었어야 할 천 조각은 걷잡을 수 없이 검게 물들어갔고, 그을린 냄새가 코를 찔렀다. 결혼식장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비명, 울음, 그리고 무너져 내리는 샹들리에의 파편 소리만이 귓가에 맴돌았다. 마치 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듯.

“윤현민…!”

목이 찢어질 듯 그의 이름을 외쳤지만,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침묵뿐이었다. 그는 어디에도 없었다. 함께 영원을 맹세했어야 할 신랑은, 이 끔찍한 화염 속에서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로부터 3년. 나는 악몽 같은 그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매일 밤 지옥을 헤맸다. 화재 사고의 유일한 생존자라는 꼬리표는 훈장이 아닌 저주였다. 언론은 연일 ‘비운의 신부’라는 타이틀로 나의 불행을 팔아먹었고, 사람들은 동정 어린 시선으로 나를 옭아맸다. 마치 죄인처럼.

“최민서 씨, 괜찮으세요?”

인사팀 박 대리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나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나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 태성 그룹의 비서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윤현민, 그 남자의 아버지인 서태성 회장의 비서로.

아이러니였다. 나의 모든 것을 앗아간 남자, 그의 아버지 밑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복수심과 죄책감, 그리고… 어쩌면 희미한 희망이 뒤섞인 감정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었다.

“회장님께서 최민서 씨를 찾으십니다.”

박 대리의 말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서 회장은 평소 나를 냉담하게 대했다. 어쩌면 당연했다. 그는 아들을 잃었고, 나는 살아남았으니까. 그의 눈에 나는 아들을 죽게 만든 죄인일지도 모른다.

서 회장실 문을 두드리는 손이 떨렸다. “들어오세요.” 그의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문 너머로 들려왔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열었다. 서 회장은 굳은 표정으로 서류를 보고 있었다. 그는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최 비서, 자네에게 새로운 임무를 맡기겠네.”

나는 긴장한 채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서 회장은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이것은… 자네 앞으로 온 초대장이네.”

초대장? 의아한 표정으로 봉투를 받아 들었다. 봉투 겉면에는 화려한 금박으로 장식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조심스럽게 봉투를 열어 초대장을 꺼냈다. 순간, 눈앞이 흐려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결혼식에 초대합니다]

…삼준하 & 추소담

삼준하. 윤현민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태성 그룹의 후계자. 그리고… 나의 오랜 짝사랑 상대.

심장이 멎는 듯했다. 윤현민과 최민서의 결혼이라니. 그것도 삼준하가 사라진 지 3년 만에. 믿을 수 없었다. 삼준하의 빈자리를, 그의 가장 친한 친구가 대신하는 건가? 배신감과 분노, 그리고 슬픔이 뒤섞여 온몸을 휘감았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초대장을 움켜쥐었다. 그 순간, 머릿속에 강렬한 섬광이 스쳐 지나갔다. 마치 꿈처럼… 아니, 환상처럼 낯선 기억들이 떠올랐다.

…다시 10년 전, 대학교 새내기 시절로 돌아간 나의 모습이.

혼란스러웠다. 이게 대체 무슨…?

“최 비서, 무슨 일 있나?” 서 회장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닙니다. 회장님.”

“좋아. 그럼 이만 나가보게.” 서 회장은 다시 서류에 시선을 고정했다. 나는 멍한 표정으로 회장실을 나왔다. 복도를 걷는 내내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 차 있었다.

회귀…?

말도 안 돼. 있을 수 없는 일이야. 하지만… 분명히 10년 전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삼준하를 만나기 전, 윤현민을 짝사랑했던 그 시절의 기억이.

나는 사무실로 돌아와 짐을 챙겼다. 지금 당장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10년 전으로 돌아왔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반드시 그날의 비극을 막아야 한다. 삼준하를 살리고, 이 끔찍한 악몽에서 벗어나야 한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서둘러 달력을 확인했다. 2014년 5월 15일. 틀림없었다. 10년 전, 내가 대학교 1학년이었던 바로 그 시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10년 동안 잊고 지냈던 한 사람의 이름을 검색했다.

삼준하.

10년 전의 그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연락해야만 한다. 그 결혼을 막기 위해서… 그리고 모든 것을 되돌리기 위해서.

전화 연결음이 울렸다. 심장이 터질 듯 격렬하게 요동쳤다. 드디어, 그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낯익은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지는 순간, 나는 숨을 멈췄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윤현민 씨, 저 추소담이에요. 우리… 내일 만날 수 있을까요?”

하지만, 그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죄송하지만, 누구시죠? 저는 추소담 씨라는 분을 모릅니다.”

순간, 온 세상이 멈춰버린 듯했다. 그의 차가운 목소리는 마치 칼날처럼 심장을 꿰뚫는 듯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