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 첫사랑

Chapter 1 — 부산행 첫사랑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흩뿌려진 붉은 와인처럼, 그녀의 삶은 그렇게 처참하게 짓밟혔다. 서연화는 흐릿한 시야 속에서, 비웃음을 머금은 조도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결국, 이렇게 끝나는군요.” 그녀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숨소리는 턱 끝까지 차올랐다.

5년 전, 연화는 재벌 그룹 태성그룹의 고명딸이었다. 아름다운 외모와 명석한 두뇌, 부족함 없는 환경 속에서 그녀는 그야말로 ‘꽃길’만을 걸을 줄 알았다. 조도겸과의 만남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그는 태성그룹의 경쟁사인 신화그룹의 후계자였지만, 연화에게 한없이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모두의 축복 속에 결혼을 약속했고, 연화는 앞으로 펼쳐질 행복한 미래를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결혼식을 3개월 앞두고, 모든 것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태성그룹의 비자금 스캔들이 터지면서, 연화의 아버지 서 회장은 검찰 조사를 받게 되었고, 그룹은 순식간에 존폐 위기에 놓였다. 그 때, 조도겸은 차갑게 변해버렸다. “태성그룹과의 결혼은 더 이상 내게 이득이 되지 않아.” 그는 냉정하게 선언했고, 연화는 배신감과 절망에 휩싸였다.

그룹을 살리기 위해, 연화는 마지막 수단을 택해야 했다. 그녀는 정략결혼을 감수하고, 정계 거물의 손자인 자승범과 결혼했다. 자승범은 냉정하고 계산적인 사람이었지만, 태성그룹을 돕는 조건으로 결혼을 받아들였다. 연화는 사랑 없는 결혼 생활을 견뎌내며, 그룹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5년 후, 태성그룹은 예전의 명성을 되찾았지만, 연화는 행복하지 않았다. 자승범과의 관계는 여전히 차갑고, 그녀의 마음속에는 조도겸에 대한 미련과 원망이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연화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다. 자승범이 태성그룹의 경쟁사인 신화그룹과 손을 잡고, 그룹을 다시 무너뜨리려 한다는 것이었다. 배신감과 분노에 휩싸인 연화는 자승범에게 맞섰지만, 그는 냉정하게 그녀를 몰아세웠다. “당신은 그저 내 성공을 위한 도구일 뿐이었어.”

결국, 연화는 자승범의 계략에 빠져 모든 것을 잃게 되었다. 태성그룹은 다시 무너졌고, 그녀는 누명을 쓴 채 세상으로부터 버려졌다. 마지막 순간, 연화는 모든 것을 후회했다.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그녀는 절망 속에서 눈을 감았다.

“연화 씨! 정신 차려요!”

낯선 목소리에 연화는 눈을 번쩍 떴다. 그녀는 익숙한 자신의 방 침대에 누워 있었다. 시계를 보니 5년 전, 조도겸과의 결혼 발표를 앞둔 날이었다. 혼란스러운 머릿속으로 지난 5년간의 끔찍한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꿈이었을까? 아니면….’ 연화는 떨리는 손으로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거울 속에는 5년 전, 앳된 얼굴의 자신이 있었다. 그녀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녀는 과거로 돌아온 것이다.

연화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의 눈빛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이번에는 절대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 조도겸, 자승범… 당신들에게 똑같이 갚아줄 거야.’ 그녀는 복수를 다짐하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화창한 날씨와는 달리, 그녀의 마음속에는 차가운 복수의 칼날이 번뜩이고 있었다. 연화는 핸드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바로 조도겸을 만나게 해줘.” 그녀의 목소리는 단호하고 차가웠다.

강남의 한 고급 레스토랑. 약속 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도착한 연화는 창밖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했다. 곧 조도겸이 나타날 것이다. 5년 전의 순수하고 어리석었던 서연화는 이제 없다. 그녀는 복수를 위해 과거로 돌아온, 냉철하고 강인한 여자일 뿐이었다. 레스토랑 문이 열리고, 조도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5년 전과 똑같이 훤칠하고 매력적인 모습이었다. 조도겸은 연화를 발견하고 밝게 웃으며 다가왔다. “연화 씨, 오래 기다렸어요?”

연화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조도겸을 맞이했다. “조도겸 씨, 오랜만이에요.”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얼음처럼 차가웠다. 조도겸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연화의 맞은편에 앉았다. “무슨 일 있어요? 오늘따라 왠지 분위기가…” 그는 걱정스러운 듯 연화를 바라보았다. 연화는 조도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 계약 결혼해요.”

조도겸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계약 결혼이라니… 무슨 엉뚱한 소리에요, 연화 씨?” 그는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연화는 테이블 위에 서류 봉투 하나를 올려놓았다. “자세한 내용은 계약서에 적혀 있어요. 당신이 받아들인다면, 신화그룹은 엄청난 이익을 얻게 될 거예요.” 그녀는 차분하게 설명했지만, 조도겸의 얼굴은 점점 굳어갔다. 조도겸은 계약서를 집어 들고 내용을 훑어보았다. 그의 얼굴은 점점 창백해져 갔다. 계약서의 마지막 조항을 읽은 순간, 조도겸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연화를 올려다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 이 조항은 대체….”

연화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만약 당신이 이 계약을 거절한다면… 당신의 아버지, 조 회장의 비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될 거예요.” 조도겸의 얼굴은 완전히 새하얗게 질렸다. 그는 연화의 눈을 멍하니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연화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도겸을 뒤로하고 레스토랑을 나섰다. 그녀의 뒤로, 조도겸의 절망적인 외침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서… 서연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