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후계자의 가면

Chapter 1 — 재벌 후계자의 가면

“다소윤아, 네 결혼, 내가 막을 수밖에 없었어.”

심장이 멎는 듯했다. 강렬한 조명 아래, 화려한 웨딩드레스를 입은 다소윤의 눈앞에, 5년 만에 나타난 옛 연인, 방찬영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샴페인 잔이 부딪히는 소리, 사람들의 웅성거림, 축복의 노래 소리… 모든 것이 멈춘 듯 다소윤의 귓가에는 방찬영의 목소리만이 맴돌았다. 그녀의 약혼자는 대한민국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태성 그룹의 후계자, 동재윤이었다.

다소윤은 숨을 헐떡이며 현실을 부정하려 애썼다. “방찬영 씨… 지금 무슨….” 떨리는 목소리는 제대로 이어지지도 못했다. 5년 전, 그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곁을 떠났었다. 가난한 현실 앞에서 무너져 버린 채. 그런 그가 지금, 그녀의 결혼식을 망치려 나타난 것이다.

“알잖아, 다소윤아. 아직도 널….” 방찬영의 절절한 눈빛은 다소윤의 마음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녀 역시 방찬영을 잊지 못했다. 가슴 한구석에는 여전히 그에 대한 애틋함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동재윤의 아내가 될 사람이었다. 태성 그룹의 며느리가 되는 것은 단순한 결혼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아버지의 회사를 살리고, 가문의 명예를 드높이는 일이었다.

동재윤은 차가운 눈빛으로 방찬영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방찬영 씨, 이쯤 하시죠. 보기 흉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동재윤은 다소윤의 팔을 잡아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다소윤 씨는 이제 제 아내입니다.”

다소윤은 동재윤의 단단한 팔에 갇힌 채, 방찬영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슬픔과 절망이 가득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돌렸다. 지금은 그를 외면해야만 했다. “동재윤 씨, 죄송해요. 잠시 바람 좀 쐬고 올게요.” 그녀는 힘겹게 말을 뱉고는 웨딩홀 밖으로 뛰쳐나갔다.

정신없이 뛰쳐나온 다소윤은 웨딩홀 뒤편의 작은 정원에 멈춰 섰다. 숨을 고르며 눈물을 훔쳤다. 방찬영의 등장으로 인해 억눌렀던 감정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동재윤과의 결혼을 진심으로 원했던 것일까? 아니면 현실에 타협하며 자신을 속여 왔던 것일까?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혼자 있고 싶으실 텐데,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다소윤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동재윤이 서 있었다. 그는 차가운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방찬영 씨 일은 신경 쓰지 마세요. 그는 곧 정리될 겁니다.”

다소윤은 동재윤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묘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눈빛이었다. “동재윤 씨… 혹시 방찬영 씨와 아는 사이인가요?” 그녀의 질문에 동재윤의 미소가 더욱 깊어졌다.

“다소윤 씨가 신경 쓰인다면, 솔직하게 말씀드리죠.” 동재윤은 천천히 다소윤에게 다가왔다. “방찬영은… 제 이복동생입니다.”

다소윤은 충격에 휩싸였다. 동재윤과 방찬영이 형제라니. 그녀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실에 말을 잇지 못했다. 동재윤은 다소윤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리고 다소윤 씨, 사실… 저는 결혼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의 싸늘한 목소리가 다소윤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우리, 계약 연애를 하는 겁니다.”

갑작스러운 폭탄선언에 다소윤은 숨을 멈췄다. 계약 연애? 동재윤은 왜 이런 제안을 하는 걸까? 그녀는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동재윤을 바라봤다. 동재윤은 그녀의 귓가에 더욱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제게 필요한 건… 다소윤 씨의 ‘가짜’ 신분뿐입니다.” 그의 눈빛은 한없이 차가웠다. “제 복수를 위해서.”

그 순간, 정원 뒤쪽에서 날카로운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동재윤의 눈이 순간적으로 날카롭게 변하며 다소윤을 끌어안았다. “위험해!” 그는 다소윤을 감싸 안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등 뒤로 느껴지는 날카로운 고통에 다소윤은 비명을 질렀다. 칼날이 동재윤의 등을 꿰뚫은 것이다. 그녀는 피 묻은 손으로 동재윤을 붙잡고 절규했다. “동재윤 씨! 동재윤 씨!”

어둠이 서서히 그녀의 눈앞을 덮쳐왔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핏빛으로 물든 동재윤의 차가운 미소였다. “이제 시작입니다, 다소윤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