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이 든 청첩장

Chapter 1 — 독이 든 청첩장

귓가에 웅웅거리는 소리와 함께 눈꺼풀이 무겁게 떠졌다. 흐릿한 시야 속으로 익숙한 샹들리에가 들어왔다. 믿을 수 없었다. 분명, 피우성의 칼날이 심장을 꿰뚫는 고통 속에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여기가… 어디지?"

목소리가 엉망으로 갈라졌다. 손을 뻗어 침대 옆 협탁을 더듬거려 핸드폰을 찾았다. 2013년 5월 15일. 시간을 확인한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10년 전, 모든 불행이 시작되기 직전으로 돌아온 것이다.

나는 서연화, HJ그룹 서 회장의 막내딸이었다. 화려한 배경 뒤에는 철저한 고독과 가면만이 존재했다. 아버지는 늘 사업 확장에만 몰두했고, 어머니는 내가 그룹의 정략결혼 도구로 쓰이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 껍데기뿐인 삶 속에서, 피우성을 만났다.

가난했지만 따뜻하고, 순수했지만 강렬했던 남자. 그는 내 메마른 심장에 한 줄기 빛과 같았다. 우리는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에 빠졌고, 미래를 약속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새빨간 거짓이었다.

피우성은 HJ그룹을 무너뜨리기 위해 계획적으로 내게 접근한 남자였다. 그는 아버지의 비리를 폭로하고, 회사를 파산시키고, 심지어 나를 배신했다. 법정에서 차갑게 돌아서던 그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그는 내 심장에 칼을 꽂았다. 모든 것을 빼앗고, 철저하게 짓밟은 채.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셨다면… 이번에는 절대 똑같이 당하지 않아."

이를 악물었다. 복수. 뼛속까지 사무치는 증오만이 심장을 가득 채웠다. 피우성, 그를 파멸시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시작은… HJ그룹의 후계자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아가씨, 회장님께서 찾으십니다."

문 밖에서 들려오는 집사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아버지와의 만남. 과거에는 그저 형식적인 인사였지만, 지금은 복수를 위한 첫걸음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었다. 과거의 순진한 서연화는 이제 없었다. 내 안에는 복수의 칼날을 품은 악마가 살고 있었다.

서재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버지 서만철 회장이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는 늘 냉철하고 무뚝뚝했다. 아버지에게 나는 그저 HJ그룹의 이익을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연화 왔느냐."

"아버지, 부르셨어요?"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버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속으로 다짐했다. 과거처럼 아버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이용해 HJ그룹을 장악하고, 피우성에게 처절한 복수를 선사할 것이다.

"이번 주말, BH그룹 외동아들 교명석과의 약혼식에 참석하거라."

아버지의 말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교명석. 그는 피우성과는 정반대의 남자였다. 재벌가의 자제답게 오만하고 냉소적이었으며,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다. 과거의 나는 당연히 이 약혼을 거부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교명석을 이용할 가치가 있었다.

"아버지 뜻대로 하겠습니다."

내 대답에 아버지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예상치 못한 반응이라는 듯, 그는 잠시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리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역시 내 딸이다. 실망시키지 않으리라 믿는다."

서재를 나서는 발걸음은 한층 가벼워졌다. 복수의 시작은 순조로웠다. 이제 남은 것은 교명석을 완벽하게 이용하고, 피우성을 함정으로 몰아넣는 일뿐이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피우성’. 심장이 쿵쾅거렸다. 과거의 나는 그의 전화에 설렘을 느꼈겠지만, 지금은 역겨움만이 느껴졌다. 전화를 받을까, 말까.

고민은 짧았다. 나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어떤 가면을 쓰고 나를 속이려 들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지금, 그의 연기를 지켜보는 것은 꽤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수신 버튼을 눌렀다. 차가운 목소리가 귓가에 꽂혔다.

"연화야, 보고 싶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