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 속 가짜 남친

Chapter 1 — 인스타 속 가짜 남친

“안효섭 씨, 제발 부탁이에요. 딱 한 달만, 제 약혼자 역할을 해주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절박함으로 떨리고 있었다. 송예은, LK 그룹 외동딸이자, 내가 10년간 짝사랑해 온 여자. 하지만 그녀의 눈은 오직 나를 ‘필요’로만 보고 있었다.

강남의 고급 레스토랑, 샴페인 잔 너머로 보이는 송예은의 얼굴은 창백했다. 평소의 당당하고 활기찬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커다란 눈망울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LK 그룹은 현재 후계 구도 싸움으로 혼란스러운 상황. 송예은은 정략결혼을 강요받고 있었고, 그 결혼을 막기 위해 나를 필요로 하게 된 것이다.

“왜 하필 나입니까?” 나는 일부러 무심하게 물었다. 10년간 감춰온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녀에게 나는 그저 ‘오래된 친구의 동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안효섭 씨는… 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니까요.” 송예은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믿을 수 없어요. 이 상황을 벗어날 유일한 방법은, 가짜 약혼자를 내세워서 시간을 버는 것뿐이에요.”

LK 그룹은 한국 굴지의 대기업이다. 송예은의 아버지, 한 회장은 냉철하고 무자비한 사업가로 유명하다. 그의 결정에 반기를 드는 것은 곧 그룹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것과 같다. 송예은은 그 싸움 한가운데 놓여 있었고, 나는 그녀의 방패가 되기로 결심했다. 비록 그것이 계약 연애라는 이름의 가면을 쓴 채라도.

“계약 조건은 뭡니까?” 나는 본론을 꺼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최대한 냉정하게 질문했다. 송예은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 준비된 서류를 내밀었다. 계약 기간, 역할, 지켜야 할 규칙, 그리고… 파기 조건.

서류를 꼼꼼히 읽어 내려갔다. 예상대로, 계약은 철저하게 비즈니스적이었다. 감정적인 교류는 최소화하고, 외부에는 완벽한 약혼 커플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데이트는 지정된 장소에서만, 스킨십은 허용되지 않으며, 개인적인 연락은 업무 외에는 금지. 마지막 조항이 눈에 들어왔다. ‘계약 위반 시, 위약금 10억 원을 지불해야 한다.’

“위약금이 상당하군요.” 나는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송예은은 난처한 듯 시선을 피했다. “어쩔 수 없었어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야 하니까요. 안효섭 씨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대한 안전하게 계약을 진행하고 싶었어요.”

나는 서류를 내려놓고, 송예은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좋습니다. 계약을 받아들이죠.” 그녀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그 미소 뒤에 숨겨진 불안과 슬픔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이 계약 연애는 단순한 쇼가 아닐 것이다. LK 그룹의 후계 구도 싸움, 그리고 송예은이 감추고 있는 비밀까지, 모든 것이 얽혀 있는 복잡한 게임의 시작이었다.

며칠 뒤, 우리는 LK 그룹 임원들이 참석하는 만찬에 함께 참석했다. 송예은은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지만, 얼굴은 여전히 긴장으로 굳어 있었다. 만찬장에는 차가운 공기가 감돌았다. 모든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한 회장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맞이했다. “두 사람, 약혼을 축하하네. 앞으로 LK 그룹을 잘 이끌어갈 젊은 피들이 되길 바라네.”

그 순간, 누군가 와인잔을 들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오랜만이네, 안효섭 씨.” 낯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예상치 못한 인물이 서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송예은의 전 남자친구이자, LK 그룹의 경쟁사인 DY 그룹의 후계자, 류진우였다. 그의 눈빛은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약혼, 진심으로 축하하는 건… 아니야.”

안효섭은 송예은의 팔을 붙잡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송예은아, 제발… 나한테 다시 돌아와. 넌 아직도 날 사랑하잖아.” 송예은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류진우의 손을 뿌리쳤다. “실례하겠습니다, 류진우 씨. 저희는 바빠서 이만.” 송예은을 데리고 만찬장을 빠져나오려던 찰나, 류진우가 내 팔을 붙잡았다. 그의 눈빛은 살기등등했다. “안효섭, 네놈… 감히 내 여자를 가로채? 후회하게 될 거다.” 류진우의 주먹이 내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