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의 강남 출근기

Chapter 1 — 미혼모의 강남 출근기

귓가를 찢는 듯한 사이렌 소리가 정수아의 얕은 잠을 강제로 깨웠다. 땀으로 축축한 베개를 끌어안고, 그녀는 멍한 눈으로 깜박이는 디지털시계를 바라봤다. 새벽 3시 17분. 악몽이라기엔 너무나 생생한 감각들이 아직도 그녀의 심장을 짓눌렀다. 5년 전, 그날 밤의 기억이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 남자의 차가운 눈빛, 버려진 듯한 절망감, 그리고… 아이의 울음소리.

"젠장… 또 시작이네."

수아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작은 원룸은 그녀의 불안한 심리 상태를 대변하듯 어수선했다. 며칠째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5년 동안 억지로 묻어두었던 기억들이, 마치 봉인 해제된 악령처럼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하필이면 그녀가 그 악연과 다시 엮이게 된 바로 이 시점에서.

수아는 서울 강남의 작은 디자인 에이전시 ‘스타일 팩토리’에서 일하는 30대 초반의 평범한 디자이너였다. 아니, 평범하다고 믿고 싶었다. 5년 전, 그녀는 평범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재벌 3세와의 하룻밤, 그리고 그 결과로 얻은 비밀스러운 아이. 모든 걸 포기하고 도망치듯 숨어 살았지만, 이제 그녀는 다시 그 남자의 그림자 안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며칠 전, 그녀의 회사에 거물급 클라이언트가 찾아왔다. 대한민국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태성 그룹의 후계자, 노태양. 5년 전, 수아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사라졌던 바로 그 남자였다.

처음 노태양을 마주했을 때, 수아는 심장이 멎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는 여전히 냉정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수아를 알아보지 못하는 듯했다. 그날 밤의 기억은 그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스쳐 지나가는 하룻밤의 실수였을까? 수아는 애써 감정을 숨기며 업무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노태양은 마치 그녀를 시험하듯, 계속해서 그녀의 주변을 맴돌았다.

"정수아 씨, 잠깐 시간 괜찮을까요?"

노태양의 낮은 목소리가 사무실 안에 울려 퍼졌다. 수아는 떨리는 손으로 마우스를 잡았다. 그의 눈빛은 예전처럼 차가웠지만, 어딘가 모르게 묘한 호기심이 어려 있었다. 수아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단둘이 있는 것은 위험했다. 하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는 지켜야 할 비밀이 있었고, 그 비밀은 노태양과의 작은 접촉에도 위태롭게 흔들릴 수 있었다.

노태양은 수아를 회의실로 안내했다. 텅 빈 회의실 안에는 짙은 정적만이 감돌았다. 노태양은 창밖을 바라보며 잠시 침묵을 지켰다. 수아는 불안한 눈빛으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왜 그녀를 이렇게 불편하게 만드는 걸까? 5년 전의 그날처럼, 또다시 그녀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으려는 걸까?

"정수아 씨."

노태양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수아는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려 수아를 마주 봤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그 안에 숨겨진 깊은 고독을 수아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 수아는 문득 깨달았다. 그 역시 5년 전의 그날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을.

"정수아 씨에게… 숨겨진 아이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노태양의 말에 수아는 숨을 멈췄다. 그녀의 심장이 쿵, 하고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어떻게 알았지? 누가, 왜… 수아는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그녀의 비밀이, 그녀의 전부였던 아이의 존재가, 이제 그의 손아귀에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노태양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 그의 눈빛은 마치 사냥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날카롭게 빛났다.

"그 아이… 내 아이 맞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