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의 숨겨진 게임

Chapter 1 — 재벌가의 숨겨진 게임

귓가에 울리는 날카로운 비명 소리에 지유빈은 억지로 눈을 떴다. 짙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것은 낯선 천장이었다. 온몸이 땀으로 축축했고, 심장은 쉴 새 없이 격렬하게 뛰어댔다. 마치 악몽이라도 꾼 듯,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했다.

“또… 또 그 꿈이야…”

지유빈은 떨리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벌써 몇 달째, 똑같은 악몽이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결혼식장에서 울려 퍼지는 총성, 붉게 물든 웨딩드레스, 그리고 그녀를 향해 뻗어오는 차가운 손길… 꿈속의 잔상은 너무나 생생해서, 매번 그녀를 현실 속에서도 질식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악몽에 잠겨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지유빈은 침대에서 일어나 커튼을 젖혔다. 새벽의 푸르스름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창밖으로는 서울 강남의 화려한 야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녀가 깨어난 곳은 펜트하우스였다. 그것도 그녀 자신의 것이 아닌, 허진석이라는 남자의 펜트하우스.

지유빈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허진석… 그는 대한민국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재벌, 태성 그룹의 후계자였다. 그리고 그녀, 지유빈은 그의 ‘계약 아내’였다.

그녀와 허진석의 만남은 철저하게 계산된 비즈니스였다. 태성 그룹의 경영권을 둘러싼 암투 속에서, 허진석은 정략결혼을 피하기 위해 지유빈을 선택했다. 그녀에게는 막대한 빚을 청산할 기회가 필요했고, 허진석에게는 가짜 아내가 필요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이해관계에 따라 결혼이라는 가면을 쓴 채 서로의 삶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지유빈은 허진석이 원하는 완벽한 아내 역할을 연기했다. 우아한 미소와 품격 있는 태도, 재벌가의 안주인으로서 손색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면 뒤에 숨겨진 진실들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허진석의 냉정한 눈빛 속에 감춰진 고독, 그리고 지유빈의 마음속에 피어나는 위험한 감정들…

지유빈은 화장대 앞에 앉아 자신의 얼굴을 바라봤다. 창백한 피부, 퀭한 눈, 그리고 굳게 다문 입술… 그녀는 거울 속의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다. 계약 아내로서의 삶은 그녀를 점점 더 깊은 고립 속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그때, 펜트하우스의 문이 열리고 허진석이 들어왔다. 그는 새벽 운동을 마치고 돌아온 듯, 땀에 젖은 운동복 차림이었다. 그의 탄탄한 몸매와 날카로운 눈매는 지유빈의 심장을 다시 한번 격렬하게 뛰게 만들었다.

“깼어?”

허진석의 목소리는 차갑고 건조했다. 마치 비즈니스 파트너에게 던지는 사무적인 인사 같았다. 지유빈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좋은 아침이에요.”

허진석은 지유빈에게 시선을 주지 않은 채, 욕실로 향했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유빈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마치 그가 그녀에게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때, 허진석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는 욕실로 들어가기 직전,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던져 놓았다. 지유빈은 무심코 핸드폰 화면을 바라봤다. 발신자는 ‘김 비서’였다. 하지만 그녀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발신자 이름 옆에 적힌 짧은 문구였다.

[회장님 지시: 지유빈 감시 철저히.]

지유빈의 심장이 멎는 듯했다. 감시… 허진석이 그녀를 감시하고 있다니. 대체 왜? 그녀는 허진석에게 어떤 존재였던 걸까? 단순한 계약 아내, 아니면… 그 이상의 무언가?

혼란과 배신감에 휩싸인 지유빈은 핸드폰을 꽉 움켜쥐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허진석을 믿을 수 없었다. 가면 뒤에 숨겨진 그의 진짜 얼굴을 알아내야만 했다. 그녀는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어쩌면 그에게 진실된 사랑을 받기 위해서, 위험한 게임을 시작해야 할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