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서류 대신 러브레터

Chapter 1 — 이혼 서류 대신 러브레터

결혼식장의 샹들리에가 핏빛으로 물들었다. 정확히는, 내 눈에만 그렇게 보였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야 할 순간, 나는 칼날 위를 걷는 듯한 공포에 질려 있었다.

“신부 입장!”

사회자의 우렁찬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지만, 발걸음은 멈춰 섰다. 순백의 웨딩드레스가 족쇄처럼 느껴졌다. 아버지의 팔을 잡은 손은 땀으로 축축했다. 강렬한 조명 아래, 심현석의 싸늘한 눈빛이 느껴졌다. 나와 정략결혼을 하는 재벌 3세, 심현석. 그는 단 한 번도 나에게 진심으로 웃어준 적이 없었다.

5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심현석을 만나기 전,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고은채로. 그때로 돌아가 이 끔찍한 결혼을 막을 수만 있다면…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지금, 파멸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심현석과의 결혼은 윤성그룹과 태강그룹의 이해관계가 얽힌 거래였다. 아버지 윤 회장은 쓰러져가는 윤성그룹을 살리기 위해, 나를 심현석에게 팔아넘겼다. 나는 그의 완벽한 가면 뒤에 숨겨진 냉혹함을 알면서도, 아버지 때문에, 그리고… 아주 조금은 그를 사랑했기에 이 결혼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사랑은 사치였다. 결혼 생활은 지옥 그 자체였다. 심현석은 나를 철저히 무시했고, 그의 어머니이자 태강그룹의 안주인인 민 여사는 시녀처럼 부려먹었다. 매일 밤, 술에 취해 돌아온 심현석은 다른 여자의 이름을 불렀다.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외롭고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서, 나는 점점 망가져갔다.

결혼 후 3년, 나는 절망 속에서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심현석은 내게 이혼 서류를 내밀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그의 차가운 눈빛을 보며, 모든 것이 끝났음을 직감했다.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는 순간, 내 인생은 완전히 망가졌다.

이혼 후, 나는 알코올 중독에 빠져 폐인처럼 살았다. 윤성그룹은 결국 부도났고, 아버지는 충격으로 쓰러져 돌아가셨다. 모든 것을 잃은 나는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했다. 그러다 교통사고를 당했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

눈을 떴을 때, 나는 5년 전, 대학교 2학년 시절로 돌아와 있었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혼란스러웠지만, 곧 이 기회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 다시 주어진 삶, 이번에는 절대로 심현석과 엮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윤성그룹을 살리고, 아버지의 꿈을 이루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지키겠다고.

하지만 운명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개강 첫날, 학교 캠퍼스에서 심현석과 마주친 것이다. 그는 여전히 냉정하고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순간, 과거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는 그의 시선에 붙잡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오랜만이네, 고은채.”

그의 목소리는 5년 전과 똑같이 낮고 차가웠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다시 시작된 악몽일까? 아니면, 이번에는 운명을 바꿀 기회가 주어진 걸까? 두려움과 함께, 알 수 없는 기대감이 솟아올랐다.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결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는 다시는 만날 일 없을 거예요.”

그 순간, 심현석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 그 미소는 너무나 낯설고 섬뜩해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나에게 한 걸음 더 다가와 귓가에 속삭였다.

“글쎄… 내 생각은 다른데.”

그리고 그는 내 손목을 잡아챘다. 너무나 강한 힘에 저항할 틈도 없이, 나는 그의 손에 이끌려 캠퍼스를 벗어나고 있었다. 도대체 그가 나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걸까? 그의 눈빛은 광기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직감했다. 이번 생에도, 나는 그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차는 서울 외곽의 한적한 별장으로 향했다. 낯익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과거, 심현석과 신혼 초에 잠시 머물렀던 곳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수많은 밤을 눈물로 지새웠다.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차에서 내리자, 심현석은 나를 거칠게 끌어당겨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나가게 해줘요! 도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

나는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그의 힘을 이길 수 없었다. 심현석은 나를 벽에 밀어붙이고,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쏘아봤다. 그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왜 이러냐고? 네가 제일 잘 알 텐데.”

그의 손이 천천히 나의 뺨을 쓸었다. 혐오감에 몸이 떨렸다. 나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있는 힘껏 소리쳤다.

“당신은 악마예요! 다시는 당신과 엮이고 싶지 않아요!”

나의 외침에, 심현석은 더욱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후회할 텐데.”

그의 손이 웨딩드레스의 지퍼를 향했다. 공포에 질린 나는 뒷걸음질 쳤지만, 이미 늦었다. 심현석은 맹수처럼 나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입술이 나의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 시작된 악몽, 과연 나는 이 끔찍한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바로 그때, 별장의 문이 거칠게 열리고, 낯선 남자가 들이닥쳤다. 그의 손에는… 총이 들려 있었다.

“거기까지 해, 심현석!”

남자의 외침과 함께, 별장 안은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심현석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졌고, 나는 공포에 질려 숨을 죽였다. 도대체 이 남자는 누구이며, 왜 총을 들고 나타난 걸까? 그리고… 이 끔찍한 상황은 어떻게 끝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