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웨딩드레스
Chapter 1 — 잿빛 웨딩드레스
칼날 같은 플래시가 터지는 순간, 손범기는 깨달았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아니, 정확히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눈부신 샹들리에 아래,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서연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신부처럼 보였다. 적어도 손범기의 눈에는, 그녀의 미소가 끔찍한 조롱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5년. 5년 동안 그가 그녀에게 바친 헌신과 사랑은, 결국 매동윤이라는 이름 앞에 무참히 짓밟혔다.
“신랑 매동윤 씨, 신부 채서연 씨, 두 분은 서로 사랑하며….” 주례사의 낭랑한 목소리가 귓가에 웅웅거렸지만, 손범기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5년 전, 벚꽃이 흩날리던 캠퍼스에서 채서연과 처음 만났던 순간만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녀의 맑은 눈, 해맑은 웃음, 그리고… 그의 심장을 송두리째 빼앗아갔던 그 모든 것들.
그녀는 손범기의 첫사랑이었다. 가난한 고학생이었던 손범기에게, 채서연은 넘볼 수 없는 별과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채서연은 그의 진심을 알아봐 주었고, 두 사람은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을 키워나갔다. 손범기는 그녀를 위해 밤낮없이 아르바이트를 했고, 그녀의 꿈을 응원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었고, 그녀의 행복이 곧 그의 행복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매동윤의 등장으로 산산이 부서졌다. 재벌 그룹의 후계자인 그는, 채서연에게 손범기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화려한 미래를 약속했다. 그리고 채서연은, 손범기의 손을 놓았다. “미안해, 손범기야.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가난한 삶을 살고 싶지 않아.” 그녀의 차가운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돌았다.
손범기는 모든 것을 잃었다. 사랑, 꿈, 미래… 심지어 그의 자존심마저도. 그는 폐인처럼 지냈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우연히 채서연과 매동윤의 결혼 소식을 접했다. 그 순간, 손범기의 심장 속에는 차가운 복수의 불길이 타올랐다. ‘채서연, 매동윤… 너희들을 반드시 파멸시킬 거야.’
결혼식은 성대하게 진행되었다. 하객들은 모두 재벌가의 사람들이었고, 그들의 화려한 옷차림과 값비싼 보석은 손범기의 초라한 모습을 더욱 부각시켰다. 그는 하객들 틈에 섞여,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도록 철저히 자신을 숨겼다. 그의 눈은 오직 채서연에게만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의 행복한 미소는, 그의 복수심을 더욱 강렬하게 자극했다.
예식이 끝나고, 피로연이 시작되었다. 손범기는 몰래 연회장 뒤편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채서연의 웨딩드레스와 똑같은 디자인의, 하지만 잿빛으로 물든 드레스가 걸려 있었다. 그는 드레스의 주머니에서 작은 유리병을 꺼냈다. 그 안에는… 강렬한 독극물이 담겨 있었다. 그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번졌다. 이제, 그의 복수가 시작될 시간이었다.
바로 그때, 등 뒤에서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서 뭐 하는 거지, 손범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