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약혼자
Chapter 1 — 가짜 약혼자
“자미선 씨, 딱 6개월만, 딱 6개월만 제 약혼녀 역할을 해주십시오.”
조승우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지만, 그 안에는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 샹들리에가 화려하게 빛나는 서울 강남의 최고급 호텔 스위트룸에서, 나는 그의 제안을 받고 있었다. 재벌 3세, 완벽한 외모, 뛰어난 사업 수완. 모든 것을 갖춘 남자, 조승우. 그런 그가 왜 평범한 나에게 이런 제안을 하는 걸까?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조승우와는 대학교 선후배 사이였다. 그는 늘 인기 있는 선배였고, 나는 그저 평범한 후배일 뿐이었다. 졸업 후,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후 몇 번 차를 마시며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그는 내 눈앞에서 ‘약혼녀’라는 단어를 꺼내고 있었다.
“왜, 저인가요?”
나의 질문에 조승우는 잠시 망설였다. 그의 시선은 테이블 위에 놓인 고급스러운 와인잔을 향했다. 그는 잔을 살짝 기울이며 와인 향을 맡는 듯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에게는 시간이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저희 그룹은 후계 구도 문제로 시끄럽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제가 빨리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기를 바라시죠. 하지만 저는… 아직 결혼할 생각이 없습니다.”
조승우의 말에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재벌가의 후계자로서 느끼는 압박감, 그리고 그만의 사정이 있는 듯했다. 나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몇 달 전, 할아버지께서 정해놓으신 약혼녀가 있었습니다. 홍석민의 외동딸, 강수아 씨. 하지만 아시다시피… 그녀는 제 오랜 친구이자, 지금은…” 조승우는 말을 멈추고 깊은 숨을 내쉬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나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강수아라면,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 인플루언서였다. 그녀와 조승우가 약혼할 사이였다니. 그리고 그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니.
“수아도 저도 원치 않는 결혼입니다. 그래서, 할아버지께서는 새로운 약혼자를 찾으라고 압박하고 계십니다. 6개월. 딱 그 시간만, 제가 결혼할 의향이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면 됩니다. 그 후에는, 자연스럽게 파혼하는 거죠. 서로에게 피해 없이.”
조승우의 계획은 완벽해 보였다. 그는 나에게 적절한 보상을 제시할 것이고, 나는 그의 약혼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 된다. 하지만 나는 망설였다. 가짜 약혼. 그것은 단순한 연기가 아니었다. 재벌가의 복잡한 관계, 언론의 관심, 그리고 무엇보다… 조승우에 대한 나의 감정.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나의 말에 조승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았다. 서울의 야경이 그의 뒤로 펼쳐졌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도시, 그 속에서 그는 외로워 보였다.
“내일까지 답을 주십시오. 자미선 씨. 당신이 아니면 안 됩니다.”
조승우는 그렇게 말하고 스위트룸을 나섰다. 나는 혼자 남겨진 방 안에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의 제안은 달콤한 유혹이었지만, 동시에 위험한 함정이기도 했다. 나는 과연 이 계약 연애를 감당할 수 있을까?
다음 날, 나는 조승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 우리는 계약서를 작성했고, 우리의 가짜 약혼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첫 번째 공식 석상. 우리는 조승우의 그룹 창립 기념 파티에 참석해야 했다. 수많은 언론과 재계 인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우리는 완벽한 약혼 커플의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하지만 파티장 입구에서, 나는 예상치 못한 인물과 마주쳤다.
강수아. 그녀는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조승우의 사촌 동생, 서지훈이 있었다. 그들의 다정한 모습은, 단순한 친구 이상의 관계를 암시하고 있었다. 수아의 입술이 움직였다. “자미선 씨, 잠깐 얘기 좀 할까요?” 그녀의 눈빛은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조승우를 돌아봤다. 그는 아무것도 모른 채, 나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수아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와 함께 파티장 구석진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나에게 충격적인 진실을 털어놓았다. “조승우는 당신을 속이고 있어요.”
수아의 말에 나는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그녀는 조승우의 숨겨진 계획, 그리고 나를 약혼녀로 선택한 진짜 이유를 털어놓았다. 그 이유는… 나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는… 당신을 미끼로 이용하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