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에서 다시 만난 너

Chapter 1 — 빗속에서 다시 만난 너

눈을 뜬 순간, 낯선 천장이 보였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10년 전 나의 낡은 자취방이었다.

“말도 안 돼…”

이태혁은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34살의 그는 분명 어제, 10년간 몸담았던 대기업 ‘한성그룹’의 펜트하우스에서 마지막 숨을 거뒀다. 간암 말기였다. 성공만을 좇아 달려온 삶, 그 끝은 처참한 고독사였다. 그런데 지금, 그는 24살의 대학생으로 돌아와 있었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이태혁은 벌떡 일어나 주변을 둘러봤다. 낡은 책상, 오래된 컴퓨터, 빛바랜 벽지… 모든 것이 10년 전 그대로였다. 꿈일까? 하지만 온몸을 짓누르는 피로감, 욱신거리는 관절, 그리고 무엇보다 생생한 절망의 기억은 꿈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10년 전, 그는 가난한 대학생이었다. 악착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벌었고, 졸업 후 한성그룹에 입사하기 위해 밤낮없이 스펙을 쌓았다. 사랑은 사치였다. 아니, 사랑할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우연히, 그녀를 만났다.

윤다연. 그의 첫사랑이자, 전부였던 여자.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던 그녀는 이태혁의 닫힌 마음을 두드려 열었다. 윤다연은 이태혁에게 세상의 아름다움을 알려주었고, 그는 그녀에게 모든 것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잔혹했다. 이태혁은 한성그룹 입사를 위해 윤다연을 버렸다. 그녀와의 관계가 그의 앞길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매달리는 그녀를 매몰차게 뿌리쳤고, 그 후 그녀는 그의 인생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윤다연아…”

이태혁은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후회, 죄책감, 그리움… 복잡한 감정들이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10년 후, 그는 성공했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아니, 윤다연을 버린 순간부터 그는 단 한 번도 행복하지 못했다. 죽음을 앞두고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그에게 진정으로 소중한 것은 돈도, 명예도 아닌 윤다연이었다는 것을.

다시 주어진 기회. 이태혁은 이번에는 다른 선택을 하기로 결심했다. 한성그룹 따위는 필요 없었다. 성공을 향한 헛된 욕망도 버릴 것이다. 오직 윤다연, 그녀만을 위해 살 것이다. 그녀를 다시 만나, 지난날의 모든 잘못을 뉘우치고, 그녀에게 진정한 사랑을 줄 것이다.

이태혁은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섰다. 윤다연이 아르바이트하는 카페 ‘봄날의 정원’으로 향했다. 10년 전, 그들이 처음 만났던 곳.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설렘과, 그녀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불안감이 뒤섞였다.

카페 문을 열자, 익숙한 종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그녀가 있었다. 긴 생머리, 맑은 눈, 해맑은 미소. 10년 전과 똑같은 모습의 윤다연이 환하게 웃으며 그를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무엇을 드릴까요?”

이태혁은 숨을 멈췄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입을 뗐다.

“윤다연아…”

그의 부름에 윤다연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당황한 듯,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 아세요? 죄송하지만, 처음 뵙는 것 같은데요…”

이태혁은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10년 전의 기억이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그가 알지 못하는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 하지만 윤다연의 다음 말은 그의 희망을 완전히 짓밟아 버렸다.

“그리고… 제 이름은 윤다연이 아닌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