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천장 위의 칼날

Chapter 1 — 유리 천장 위의 칼날

핏빛 석양이 서울 강남의 고층 빌딩들을 붉게 물들였다. 마치 내 심장을 꿰뚫는 듯한 고통과 함께.

“삼채은아, 네 결혼 상대는… KM 그룹의 후계자, 남준서이야.”

양아버지, 서 회장의 목소리는 사무실 안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의 얼굴은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지만, 냉정한 눈빛만은 선명하게 느껴졌다. 내 결혼 상대를 발표하는 그의 말투는 마치 사업 거래를 발표하는 것과 같았다. 감정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나는 그의 딸이 아니라, KM 그룹과의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한 도구인 것처럼.

나는 삼채은. 26년 전, 보육원 앞에서 발견되어 서 회장에게 입양되었다. 그는 냉정하고 무자비한 사업가였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나에게 부족함 없이 모든 것을 제공했다. 좋은 옷, 좋은 학교, 좋은 교육… 하지만 사랑만은 주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사랑 따위는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재벌가의 입양딸에게 감정적인 교류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지도.

남준서… 그의 이름은 이미 수없이 들어왔다. KM 그룹은 서 회장의 서진 그룹과 끊임없이 경쟁하는 거대 기업이었다. 남준서는 냉철하고 완벽한 후계자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 그와 내가 결혼이라니. 그것도 계약 결혼이라니. 웃기지도 않았다.

“아버지, 저는… 남준서 씨를 만난 적도 없어요.”

내 항변은 서 회장의 싸늘한 눈빛에 가로막혔다. “만날 필요 없다. 결혼은 사업이다. 서진 그룹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해라.”

나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아버지에게 나는 그저 서진 그룹의 성공을 위한 카드일 뿐이었다. 내 감정, 내 행복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결혼식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화려한 웨딩드레스, 수많은 하객, 번쩍이는 카메라 플래시… 모든 것이 완벽하게 연출된 쇼였다. 남준서는 예상대로 차갑고 냉정했다. 그는 형식적인 미소만 지을 뿐, 나에게 어떤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가면을 쓴 인형처럼.

결혼 후, 우리의 삶은 철저하게 분리되었다. 그는 KM 그룹의 후계자로서 바쁜 나날을 보냈고, 나는 서진 그룹의 디자인팀에서 일하며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같은 집에서 살았지만, 서로의 존재를 거의 느끼지 못했다. 주말에는 정략결혼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으로 함께 공식 행사에 참석했다. 완벽한 쇼윈도 부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디자인팀 회식 자리에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내 동료, 용성재의 입에서 나온 남준서의 이름.

“남준서 전무님, 진짜 멋있지 않아? 게다가 곧 서진 그룹을 인수한다며. 삼채은 씨는 좋겠네. 남편 덕분에 승승장구하겠어.”

용성재의 말에 나는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남준서가 서진 그룹을 인수한다고? 남편이 아내의 회사를 인수한다? 이건… 대체 무슨 의미일까?

그날 밤, 나는 남준서를 기다렸다. 새벽 3시가 넘어서야 그는 술에 취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를 붙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남준서 씨, 정말… 서진 그룹을 인수하는 건가요?”

남준서는 나를 싸늘하게 내려다보며 비웃었다. “이제 알았어? 멍청한 척하는 건 연기였나 보군. 그래, 내가 서진 그룹을 인수할 거야. 그리고 네 아버지, 서 회장을 완전히 몰락시킬 거다.”

나는 충격에 휩싸였다. “왜… 왜 그러는 거죠?”

남준서의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떠올랐다. “네 아버지 때문에 내 가족이 파멸했으니까. 그리고… 널 이용해서 복수할 거야, 삼채은.”

그 순간,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나의 결혼은 복수의 도구였던 것이다. 남준서는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증오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복수를 위한 완벽한 제물이었던 것이다.

며칠 후, 나는 남준서의 서재에서 우연히 오래된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사진 속에는 젊은 시절의 서 회장과… 남준서의 어머니가 함께 있었다. 그리고 사진 뒷면에는 붉은 글씨로 쓰여 있었다. ‘나의 사랑, 나의 전부…’. 그 글씨를 보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은… 아버지의 과거였다는 것을. 그리고 남준서의 복수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것을…

남준서는 차가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이제 시작이야, 삼채은아. 네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나의 가장 큰 기쁨이 될 거야.” 그의 손이 천천히 나의 목을 조여왔다. 숨을 쉴 수 없었다. 눈앞이 흐릿해져 갔다.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고. 복수해야 한다고. 나를, 그리고 내 가족을 파멸시키려는 그에게. 그런데… 눈을 떴을 때, 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나는… 5년 전의 내 방에 있었다. 21살의 삼채은으로 돌아온 것이다. 모든 것이 되돌아갔다. 남준서와의 악몽 같은 결혼이 시작되기 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