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3호의 비밀

Chapter 1 — 803호의 비밀

“엄마… 보고 싶었어요.”

작은 손이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내 뺨을 감쌌다. 5년 전, 그 남자… 아니, 국승빈과의 하룻밤 실수로 생긴 아이, 하율이었다. 그 사실을 숨기고 홀로 키워온 딸이었다. 강남의 화려한 야경 아래, 벚꽃잎이 흩날리는 공원에서 우리는 마치 운명처럼 다시 만났다.

5년 전, 안지유는 스물셋의 풋풋한 대학생이었다. 졸업을 앞두고 디자인 공모전 준비에 몰두하던 그녀는 친구의 꼬임에 빠져 강남의 한 클럽에 발을 들였다. 그곳에서 그녀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자신을 붙잡아준 한 남자를 만났다. 짙은 눈썹과 날카로운 콧날, 차가운 듯하면서도 어딘가 슬픔이 묻어나는 눈빛을 가진 남자, 국승빈이었다. 그날 밤, 안지유는 술기운에 이끌려 그와 하룻밤을 보내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 그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연락처조차 남기지 않은 채.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안지유는 절망했다. 갓 졸업한 대학생 신분에 미혼모라니. 부모님께 차마 말할 수 없어 홀로 아이를 낳아 키우기로 결심했다. 디자인 실력을 살려 작은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며 밤낮으로 일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하율이의 웃음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5년 후, 안지유는 어엿한 여성복 쇼핑몰 CEO가 되었다. 하율이는 밝고 건강하게 자라 일곱 살이 되었다. 하율이는 5년 전 딱 한 번 만났던 아빠, 국승빈을 그리워했다. “아빠는 언제 와?” 하율이는 매일 밤 안지유에게 묻곤 했다. 안지유는 그럴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하율이에게 아빠의 존재를 숨기는 것이 옳은 일일까?

어느 날, 안지유는 강남의 한 호텔에서 열리는 패션 행사에 참석하게 되었다. 클라이언트와의 중요한 미팅이 있는 자리였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행사장에 들어선 안지유는 순간 숨을 멈췄다. 행사장의 가장 앞자리에 앉아있는 남자는 다름 아닌 국승빈이었다. 5년 전 그날 밤 이후 처음 보는 그의 모습은 더욱 짙어진 남성미와 냉철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재벌 기업 태성그룹의 후계자였다. 안지유는 자신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남자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하지만… 시선이 마주친 순간, 국승빈의 눈빛이 흔들렸다. 마치 무언가를 알아챈 듯한 눈빛이었다.

하율이는 안지유의 쇼핑몰 사무실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안지유가 행사장에 간 사이, 하율이는 엄마를 기다리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때, 사무실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하율이는 처음 보는 남자였지만,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남자는 하율이에게 다가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녕? 이름이 뭐니?”

하율이는 수줍게 대답했다. “하율… 이에요.”

남자는 하율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하율아… 아빠라고 불러도 될까?”

그 순간, 안지유는 행사장에서 국승빈을 피해 도망치듯 뛰쳐나왔다. 불안한 예감이 그녀를 덮쳐왔다. ‘설마… 국승빈 씨가 하율이를…?’

사무실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안지유의 심장은 걷잡을 수 없이 요동쳤다. 그녀는 하율이와 국승빈의 만남을 막아야 했다. 하지만… 이미 늦어버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