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데이트

Chapter 1 — 마지막 데이트

“사랑해… 다시는 널 혼자 두지 않을게.” 채준호는 핏빛으로 물든 김예진의 창백한 얼굴을 쓸어내리며 절규했다. 그녀의 싸늘한 손은 그의 굳은 맹세를 붙잡으려는 듯 희미하게 떨렸다. 멎어버린 심장 박동 소리만이 텅 빈 응급실을 가득 채웠다.

숨 막히는 고통과 함께 채준호는 눈을 떴다. 낯익은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낯익을 리 없었다. 분명 그는… 김예진이… 아니야. 꿈이었을까? 온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는 벌떡 일어나 주변을 둘러봤다. 낡은 벽지, 오래된 책상, 촌스러운 꽃무늬 이불. 10년 전, 대학 시절 자취방과 똑같았다.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부여잡고 그는 달력을 확인했다. 2014년 5월 12일. 믿을 수 없었다. 10년 전으로 돌아오다니. 김예진을 만나기 3개월 전이었다. 그는 망설일 틈도 없이 휴대폰을 켰다. 손가락은 이미 저장된 번호를 찾아 움직이고 있었다. ‘김예진.’ 심장이 멎을 듯 격렬하게 요동쳤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맑고 청아한 목소리. 채준호는 숨을 멈췄다. 살아있다. 그녀가 살아있다. “김예진아… 나 채준호이야.” 그의 목소리는 걷잡을 수 없이 떨리고 있었다.

“저… 죄송하지만, 누구시죠? 모르는 번호인데요…” 김예진의 목소리는 차갑고 딱딱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채준호는 당황했다. 10년 전, 그들은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였다. 아니, 정확히는 채준호 혼자만이 그녀를 짝사랑하고 있었다. 그녀는 늘 그의 시선 끝에 있었지만, 닿을 수 없는 별처럼 느껴졌다.

채준호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말을 이었다. “김예진 씨, 제가 좀 엉뚱한 소리를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3개월 뒤, 김예진 씨는 강남역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될 거예요. 그리고… 우연히 저를 만나게 되겠죠.”

“지금 장난하시는 거예요? 제가 왜 모르는 남자랑 강남역에서 만나야 하죠?” 김예진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다시는 전화하지 마세요.” 뚝, 하고 전화가 끊겼다. 채준호는 멍하니 휴대폰을 바라봤다. 과거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그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다시 시작할 기회가 주어졌다. 이번에는 반드시 김예진을 지켜야 한다. 그녀의 불행을 막고, 그녀와 함께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10년 전의 그는 그저 평범한 대학생일 뿐이었다. 그녀의 관심을 끌 만한 그 무엇도 없었다.

그때, 그의 눈에 낡은 노트북이 들어왔다. 10년 동안 잊고 지냈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대학 시절, 친구들과 함께 개발했던 인공지능 주식 투자 프로그램 ‘알파고’를 떠올렸다. 당시에는 실패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10년 후의 주식 시장 흐름을 알고 있는 그는 ‘알파고’를 완성시켜 엄청난 부를 쌓을 수 있다.

돈, 명예, 권력… 그녀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그는 다시 한번 결심했다. 이번에는 절대 후회하지 않으리라.

3개월 뒤… 채준호는 강남역 7번 출구 앞 카페 ‘Cafe Bene’에 앉아 초조하게 시계를 확인했다. 12시 58분. 약속 시간 2분 전이었다. 심장이 터질 듯 쿵쾅거렸다. 드디어, 그녀가 나타났다. 긴 생머리, 하얀 피부, 맑은 눈동자… 10년 전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옆에는 낯선 남자가 서 있었다. 두 사람은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있었다. 채준호의 얼굴은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는 대체 누구일까? 그의 등장으로 모든 계획이 틀어지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