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편지

Chapter 1 — 5월의 편지

칼날이 닿기 직전, 서연은 눈을 감았다. 싸늘한 금속의 감촉, 그리고… 고통.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마주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10년 전 자신의 방이었다.

“젠장… 꿈인가?”

서연은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10년. 끔찍했던 결혼 생활, 시댁의 냉대, 남편의 외면, 그리고… 마지막 순간의 절망. 모든 것이 꿈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서연은 알고 있었다. 이건 꿈이 아니라는 것을.

10년 전, 그녀는 스물두 살의 대학생이었다. 재벌 그룹의 후계자인 정해인과의 정략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당시 그녀는 순수했고, 사랑을 믿었다. 정해인의 차가운 눈빛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결혼은 지옥의 시작이었다. 정해인은 그녀를 철저히 무시했고, 시어머니는 끊임없이 그녀를 괴롭혔다. 그녀의 삶은 점점 망가져갔다.

“다시는… 똑같은 삶을 살 순 없어.”

서연은 결연한 눈빛으로 다짐했다. 과거를 바꿀 기회가 주어졌으니, 이번에는 반드시 다른 선택을 할 것이다. 정해인과의 결혼은 없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되찾고, 진정한 행복을 찾을 것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정해인과의 정략결혼을 막는 것이었다. 서연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결혼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격노하며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정해인과의 결혼은 이미 결정된 사항이며, 그룹의 미래가 걸린 일이라고 했다.

“아버지, 제발… 한 번만 제 말을 들어주세요. 저는 그 사람과 결혼하면 불행해질 거예요.”

서연은 눈물을 글썽이며 애원했지만, 아버지는 냉정하게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절망에 빠졌다. 아버지마저 그녀를 이해해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그때, 서연의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정해인이었다. 그녀는 망설이다 전화를 받았다.

“서연 씨, 내일 약혼식장에서 봅시다.”

정해인의 차가운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서연은 숨을 멈췄다. 그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아니, 어쩌면… 그 역시 그녀처럼 과거로 돌아온 것일까?

“정해인 씨… 혹시… 당신도….”

서연이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정해인은 냉소를 섞어 답했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지? 내일, 약혼식장에서 보자. 후회할 짓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전화는 뚝 끊겼다. 서연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정해인은 정말 과거를 모르는 걸까? 아니면… 그녀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걸까? 그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일 약혼식장에서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옷장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10년 전 약혼식에서 입기로 했던 순백의 드레스가 걸려 있었다. 서연은 그 드레스를 꺼내 들었다. 차가운 감촉이 손끝에 느껴졌다. 그녀는 드레스를 바라보며 결심했다. 내일, 모든 것을 끝내겠다고. 그녀는 더 이상 과거의 어리석은 서연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서연은 결연한 표정으로 약혼식장으로 향했다. 식장 입구에서 그녀는 예상치 못한 인물과 마주쳤다. 그녀의 옛 연인이었던 향준식이었다.

“서연아… 정말 결혼하는 거야?”

준식의 눈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서연은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준식아… 미안해. 하지만… 어쩔 수 없어.”

그녀는 준식을 지나쳐 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화려한 샹들리에, 고급스러운 장식, 수많은 하객들… 모든 것이 그녀를 압도했다. 그녀는 정해인을 찾았다. 그는 단상 위에 서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눈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어딘가 모르게 슬픔이 느껴지는 듯했다.

서연은 정해인에게 다가가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정해인 씨… 우리, 여기서 끝내요.”

정해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는 굳게 다문 입술로 그녀를 응시했다. 그때, 갑자기 식장 문이 활짝 열리며 한 여자가 뛰어들어왔다. 그녀는 다름 아닌 정해인의 비서, 심예원이었다. 심예원은 숨을 헐떡이며 외쳤다.

“회장님! 큰일 났습니다! 그룹에… 그룹에….”

심예원은 말을 잇지 못하고 쓰러졌다. 식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서연은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정해인의 눈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절망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그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했다. 그리고… 그는 서연에게 속삭였다.

“네가… 네가 그런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