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웨딩드레스
Chapter 1 — 수상한 웨딩드레스
“결혼, 그거 제가 하겠습니다.”
그 말을 내뱉은 순간, 마치 운명의 톱니바퀴가 어긋나기 시작한 것 같았다. 5년간 죽도록 일했던 디자인 회사에서 쫓겨나듯 사직서를 던지고, 홧김에 친구들과 클럽에서 밤새도록 술을 마셔댔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떠보니 낯선 호텔 스위트룸 침대 위였다. 그리고 내 옆에는 대한민국 최고 재벌, SJ 그룹의 후계자 차은우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죠?”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왔다. 어젯밤의 기억은 필름처럼 끊어져 있었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니, 고급스러운 가구와 화려한 샹들리에가 눈에 들어왔다. 분명 내 낡은 원룸은 아니었다. 그때, 차은우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일어났어요?”
나른한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으며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 눈빛은 마치 맹수가 먹잇감을 노리는 듯 날카로웠다.
“어젯밤 일… 기억 안 나요?”
그의 질문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혹시 내가 무슨 실수를 저지른 걸까? 차은우는 내 불안한 표정을 읽었는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을 이었다.
“당신, 어젯밤 나한테 아주 솔직한 제안을 했었죠.”
나는 숨을 죽이고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대체 무슨 제안을 했길래, 그가 이런 표정을 짓고 있는 걸까?
“계약 결혼, 하자고.”
그의 입에서 나온 단어는 충격적이었다. 계약 결혼? 내가 왜, 그에게 그런 제안을… 기억을 더듬어보려 애썼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하얗게 비어 있었다. 차은우는 내 혼란스러운 표정을 즐기는 듯했다. 그는 침대 옆 협탁 위에 놓인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 적혀 있어요. 당신이 제시한 조건과, 내가 덧붙인 몇 가지 조항들이.”
나는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열어 서류를 꺼냈다. A4 용지에는 빽빽하게 글자들이 적혀 있었다. 계약 기간, 위약금, 역할 분담… 마치 사업 계약서처럼 냉정하고 현실적인 내용들이었다. 마지막 장에는 차은우의 서명이 뚜렷하게 박혀 있었다. 나는 망설이며 첫 장을 읽어내려갔다. 계약의 목적은 ‘SJ 그룹의 후계 구도에서 살아남기 위한 쇼윈도 부부’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계약 조건 중 하나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계약 기간 동안, 서로에게 진심으로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그 순간, 차은우의 전화가 울렸다. 그는 통화 버튼을 누르고 짧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네, 곧 들어가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차은우는 싸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제 시간이 없어요. 당신의 대답을 들을 시간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그의 완벽한 몸매가 눈에 들어왔지만, 지금은 그럴 정신이 없었다. 나는 여전히 계약서를 든 채 멍하니 서 있었다.
“5분 줄게요. 그 안에 결정해요. 이 계약을 받아들일 건지, 아니면… 내 인생에서 영원히 사라질 건지.”
그의 마지막 말은 마치 칼날처럼 날카롭게 내 심장을 찔렀다. 나는 숨 막히는 긴장감 속에서 계약서와 차은우를 번갈아 바라봤다. 5분… 그 짧은 시간 안에 내 인생을 결정해야 한다니. 그때, 룸 문이 벌컥 열리고 한 여자가 뛰어들어왔다.
“차은우 씨! 대체 어디 갔었어요? 어머니께서…”
여자는 나와 차은우를 번갈아 보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손에는 웨딩드레스가 들려 있었다. 그것은 순백색의 아름다운 웨딩드레스였지만, 어쩐지 불길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