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코트의 온도
Chapter 1 — 회색 코트의 온도
결혼식장 밖, 흩날리는 벚꽃잎 사이로 그의 회색 코트 자락이 스치는 순간, 나는 숨을 멈췄다. 자승범. 5년 전, 내 인생의 전부였던 남자. 그리고 지금은, 내 사촌 언니의 남편이 될 남자.
심장이 쿵, 하고 발밑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5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그의 얼굴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날카로운 콧날과 깊은 눈매, 살짝 헝클어진 흑발까지. 마치 어제 만난 사람처럼 생생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숨겼다. 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들킬 자신이 없었다.
“하율아, 어디 갔었어? 신부 대기실에 있어야지.”
등 뒤에서 들려오는 언니, 김민서의 목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밝게 웃는 얼굴의 언니는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신부의 모습이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언니에게 다가갔다. “잠깐 바람 좀 쐬고 왔어. 너무 긴장해서.”
“긴장하긴. 네 결혼식도 아니면서.” 언니는 장난스럽게 내 팔을 톡 쳤다. “자승범 씨, 하율이 잠깐 데리고 올게. 인사시켜주고.”
자승범… 씨? 그 이름이 내 귓가에 울리는 순간,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것 같았다. 언니는 내 팔을 잡고 자승범에게로 향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언니의 손을 뿌리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언니의 행복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내가 사랑했던 남자가 언니의 남편이 된다는 잔인한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지만, 더 이상 도망칠 곳은 없었다.
자승범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미세하게 눈썹을 움직였다. 그 짧은 순간, 나는 그의 눈빛에서 수많은 감정을 읽었다. 놀라움, 당혹감, 그리고… 그리움. 착각일까. 아니면 정말로…?
“자승범 씨, 내 동생 하율이야. 미국에서 공부하고 이번에 잠시 들어왔어.” 언니는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소개했다. 자승범은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봤다. 그 침묵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나는 겨우 입을 떼어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서… 자승범 씨.”
“오랜만이네, 하율아.” 그의 목소리는 5년 전과 똑같았다. 낮고 부드러운, 잊을 수 없는 목소리. 나는 그의 눈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고, 손끝이 떨려왔다. 5년 전, 우리는 왜 헤어졌던 걸까. 그날의 진실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지금, 우리는 다시 만난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결혼식이 시작되고, 나는 하객석에 앉아 멍하니 식을 지켜봤다. 언니와 자승범은 너무나 아름다운 한 쌍이었다. 모두가 그들의 행복을 축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거대한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행복을 빌어줄 자격이 있을까. 아니, 그럴 수 있을까. 그때, 내 옆자리에 누군가 앉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자승범의 비서, 구본혁이었다. 그는 나에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하율 씨, 회장님께서 당신을 따로 만나 뵙고 싶어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