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아버지

Chapter 1 — 이름 없는 아버지

“야성우 씨, 제발… 딱 한 번만이라도… 시나은이 좀 봐주세요…”

눈물로 얼룩진 용채은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 5년 전, 그 벚꽃 흩날리던 밤 이후로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야성우, DK그룹의 후계자이자 냉철하기로 소문난 그가, 용채은의 애원에 미간을 좁혔다. 그의 앞에는 다섯 살배기 여자아이, 시나은이 서 있었다. 시나은은 커다란 눈망울로 야성우를 올려다보며 그의 옷자락을 살짝 잡았다. “아빠…?”

5년 전, 용채은은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봉사 동아리 MT에서 우연히 만난 야성우에게 강렬하게 끌렸고, 짧지만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야성우는 재벌가의 자제였고, 정략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용채은은 그 사실을 알고 그를 떠났지만, 이미 그녀의 뱃속에는 시나은이 자라고 있었다.

용채은은 혼자 시나은을 키우며 힘겹게 살아왔다. 작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밤에는 번역 일을 했다. 시나은에게만큼은 부족함 없이 해주고 싶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시나은이 희귀병 진단을 받았다. 치료비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막대했고, 용채은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야성우를 찾아온 것이다.

“5년 전 일은 이미 끝난 일이야. 그리고 난 곧 결혼할 사람이야.” 야성우의 차가운 목소리가 용채은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는 시나은을 외면한 채 용채은에게 돈 봉투를 내밀었다. “이걸로 치료를 받든지, 아니면… 알아서 해.”

용채은은 눈물을 글썽이며 돈 봉투를 바닥에 던졌다.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시나은이는 당신 딸이에요! 당신의 핏줄이라고요!”

야성우는 잠시 흔들리는 듯했지만, 곧 냉정한 표정을 되찾았다. “증거 있어? 네 말만 믿고 내가 어떻게 확신해?”

용채은은 시나은의 작은 손을 잡고 야성우를 똑바로 쳐다봤다. “DNA 검사라도 하시겠어요? 좋아요. 시나은이가 당신 딸이라는 걸 증명해 보이겠어요.”

그때, 시나은이 갑자기 숨을 헐떡이며 쓰러졌다. “엄마… 숨이… 안 쉬어져…”

용채은은 시나은을 안고 절박하게 외쳤다. “도와주세요! 제발… 우리 시나은이 좀 살려주세요!”

야성우는 쓰러진 시나은을 보고 충격에 휩싸였다. 그의 머릿속에는 복잡한 감정들이 휘몰아쳤다. 냉정하게 외면해야 할까, 아니면….

그때, 야성우의 비서가 다급하게 뛰어와 그의 귀에 속삭였다. “회장님, 큰일났습니다! 주주총회가 긴급 소집되었습니다. 경쟁사인 태성그룹에서 적대적 M&A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야성우는 굳은 표정으로 용채은과 시나은, 그리고 비서를 번갈아 쳐다보며, 딜레마에 빠졌다. 그는 지금 당장 회사를 지키기 위해 주주총회에 참석해야만 했다. 하지만 눈앞에 쓰러진 딸을 외면할 수도 없었다. 그의 선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