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의 마지막 페이지

Chapter 1 — 첫사랑의 마지막 페이지

귓가에 맴도는 웅성거림, 코를 찌르는 매캐한 연기 냄새. 나는 희미하게 눈을 떴다. 익숙한 듯 낯선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타다 남은 가구 조각들, 검게 그을린 벽, 그리고 무엇보다… 내 손에 끼워진 다이아몬드 반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결혼 5주년 기념 파티가 열리던 그날 밤, 호텔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다. 마지막 순간, 남편 채준호의 싸늘한 눈빛과 함께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5년 전, 결혼식 당일 아침으로 돌아와 있었다. 재벌가 막내딸, 방예서로서의 삶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5년 전, 나는 세현 그룹의 후계자 채준호와의 정략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사랑 없는 결혼. 아버지 윤 회장의 강압적인 결정이었다. 채준호는 냉정하고 계산적인 남자였다. 그는 세현 그룹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나를 이용할 뿐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아버지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 가문의 명예, 그것이 내 어깨를 짓누르는 족쇄였다.

결혼식 당일 아침, 나는 화려한 드레스 대신 검은색 정장을 입었다. 면사포 대신 차가운 가면을 썼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슬픔과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복수할 거야. 반드시.’ 나는 속으로 맹세했다. 채준호, 그리고 윤 회장. 나를 이 지옥으로 밀어 넣은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고통을 되돌려 줄 것이다.

결혼식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수많은 하객들 앞에서, 나는 채준호의 옆에 섰다. 그의 차가운 손이 내 손을 감쌌다. 그 순간, 나는 5년 후의 화재를 떠올렸다. 불길 속에서 채준호의 얼굴은 더욱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그는 나를 버리고 도망쳤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는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했다.

결혼식 피로연, 나는 미리 준비해둔 와인잔을 들었다. 잔 안에는 치사량의 독극물이 들어 있었다. ‘미안해요, 아버지.’ 나는 속으로 사죄하며, 와인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하지만, 그 순간, 누군가 내 손목을 잡아챘다.

“방예서야, 무슨 짓이야!”

고개를 돌리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대학 시절, 내 첫사랑이었던 김수현이었다. 그는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김수현은 세현 그룹과는 전혀 상관없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하지만, 그는 내게 진정한 사랑을 가르쳐준 사람이었다. 5년 전, 나는 아버지의 반대로 그와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김수현 씨… 왜 여기 있는 거죠?”

내 질문에, 김수현은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결혼을 막으러 왔어. 방예서야, 제발… 이러지 마.” 그의 눈에는 간절함이 가득 차 있었다. 나는 흔들렸다. 복수심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했다. 와인잔을 든 손이 떨렸다.

“김수현 씨… 나는 이미 늦었어요. 되돌릴 수 없어요.”

그때, 누군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무슨 소란이지?” 채준호였다.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김수현을 쏘아보았다. “김수현 씨,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김수현은 채준호를 노려보며 말했다. “채준호 씨, 당신은 방예서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어. 그녀를 놓아줘.”

채준호는 비웃었다. “김수현 씨, 주제를 아십시오. 방예서 씨는 이제 내 아내입니다. 당신이 상관할 바가 아니오.” 그는 내 팔을 잡아끌며 말했다. “방예서 씨, 갑시다. 피로연을 망칠 셈이오?”

나는 채준호의 손에 이끌려, 피로연장 안으로 들어갔다. 김수현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나는 뒤돌아보며, 그에게 작별 인사를 고했다. ‘미안해요, 김수현 씨. 나는 당신을 선택할 수 없어요.’

피로연이 끝난 후, 나는 채준호와 함께 신혼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제주도의 한 고급 호텔이었다. 우리는 방에 도착하자마자, 서로에게 등을 돌렸다. 침묵만이 감돌았다. 채준호는 서류 가방을 열어, 업무를 시작했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과거를 회상했다.

그때, 갑자기 방 안의 불이 꺼졌다. 정전이었다. 채준호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전화기를 들었다. “무슨 일이야? 빨리 조치해!” 나는 어둠 속에서, 채준호의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지금이야.’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미리 준비해둔 칼을 꺼내 들었다. 칼날은 차갑게 빛났다. 나는 채준호에게 다가가, 그의 등 뒤에 칼을 겨누었다. 하지만, 그 순간, 채준호가 갑자기 뒤돌아섰다.

“무슨 짓이야, 방예서!”

그의 손에는 권총이 들려 있었다. 총구는 정확히 내 머리를 향하고 있었다. 나는 숨을 멈췄다. 5년 전의 화재, 그리고 지금… 나는 또다시 죽음의 문턱에 서 있었다.

“네가 감히… 나를 죽이려 하다니.” 채준호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네 아버지처럼, 너도 똑같이 어리석군.” 그는 방아쇠를 당기려 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나는구나.’

하지만, 총성은 울리지 않았다. 대신, 날카로운 쇳소리가 들렸다. 나는 눈을 떴다. 채준호의 뒤에, 누군가 서 있었다. 그는 채준호의 목에 칼을 겨누고 있었다. 그는… 김수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