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길의 고백

Chapter 1 — 출장길의 고백

“동은채 씨, 잠깐 내 방으로 와 봐.”

인사팀 팀장, 복현도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냉정했다.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또 무슨 일일까? 지난달 신입 사원 연수 건으로 보고서에 오타가 있었다고 그렇게 갈굼을 당했는데. 겨우 며칠 잠잠해지나 싶더니, 다시 폭풍전야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최대한 침착하게 대답했다.

“네, 팀장님. 바로 가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팀장실로 향하는 발걸음은 천근만근이었다. 2년 차 대리, 동은채. 명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누구나 선망하는 대기업, ‘태성 그룹’에 입사했지만, 현실은 매일 야근에 치이고, 상사 눈치나 보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특히 복현도 팀장은 동은채에게는 그 이상의 존재였다. 완벽주의자에 냉철하기 그지없는 그는 동은채의 사소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마치 그녀를 싫어하는 것처럼.

팀장실 문 앞에서 다시 한번 심호흡을 했다. 똑똑, 노크 소리가 이렇게 떨릴 줄이야. “들어와.” 짧고 굵은 대답이 들려왔다. 문을 열고 들어선 팀장실은 언제나처럼 깔끔하고 정돈되어 있었다. 복현도는 넓은 책상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었다. 그의 날카로운 눈매와 굳게 다문 입술은 긴장감을 더했다.

“앉으세요, 동은채 씨.”

동은채는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술만 달싹거렸다. 복현도는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을 이어갔다. “이번 주말, 박 회장님 손녀 결혼식에 동행하세요.”

예상치 못한 말에 동은채는 눈을 크게 떴다. 결혼식 동행? 그것도 회장님 손녀의? “제가요…?”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태성 그룹은 재계 순위 5위 안에 드는 대기업이었다. 그런 그룹 회장님의 가족 행사에, 그것도 평범동 대리인 자신이 참석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복현도는 그제야 동은채를 쳐다봤다. 그의 시선은 차갑고 날카로웠다. “네, 동은채 씨.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동은채 씨가 가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자리에 참석해본 적도 없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는데요.” 동은채는 솔직하게 말했다. 이런 중요한 자리에 실수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복현도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걱정 마세요. 제가 옆에서 다 알려줄 겁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이번 결혼식에 동은채 씨가 제 약혼녀 역할로 참석해야 한다는 겁니다.”

“네…?” 동은채는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약혼녀 역할이라니.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일까?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댔다. 복현도 팀장과 약혼녀 역할이라니,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하게 얽히고설켰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복현도는 그런 동은채를 가만히 응시하며 덧붙였다. “이번 일, 거절할 수 없습니다. 회장님의 지시입니다.”

그 순간, 동은채의 눈에 팀장님의 책상 서랍 한켠에 살짝 삐져나온 벚꽃 잎이 들어왔다. 저건 뭐지? 마치 오래된 비밀처럼, 굳게 닫힌 서랍 속에서 홀로 봄을 기다리는 벚꽃 잎. 동은채는 왠지 모르게 그 벚꽃 잎에 시선을 빼앗겼다. 저 벚꽃 잎처럼, 자신도 그의 서랍 속에 갇히게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