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캔들의 규칙

Chapter 1 — 스캔들의 규칙

“편수아 씨, 이번 주말에 제 약혼녀 역할, 어때요?”

카페 안은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였다. 테이블 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아메리카노만이, 그나마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알려주는 듯했다. 향준식, 눈앞의 이 남자는 대한민국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태성 그룹의 후계자이자, 내겐 그저 악몽 같은 존재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악몽의 ‘씨앗’이라고 해야 할까.

일주일 전, 나는 실수로 클럽에서 향준식의 셔츠에 와인을 쏟았다. 그것까지는 흔한 실수였다. 문제는 그 직후 터져 나왔다. 파파라치에게 찍힌 사진 한 장. ‘태성 그룹 후계자, 미모의 여성과 심야 데이트?’라는 자극적인 제목과 함께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태성 그룹은 즉각 부인했지만, 여론은 쉽게 잠재워지지 않았다. 게다가 향준식에게는 정략결혼을 앞둔 약혼녀, 도경수가 있었다. 향준식은 언론 플레이에 능했고, 향준식과의 스캔들은 그녀에게 완벽한 빌미를 제공했다.

“농담은, 향 이사님 특기 아니셨나요?”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대꾸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계약 연애라니. 드라마에서나 보던 일이 현실로 닥쳐오다니. 그것도 재벌 3세의 약혼녀 대역이라니.

향준식은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테이블 위로 몸을 기울였다. 그의 눈빛은 묘하게 날카로웠다. “농담 아닙니다, 편수아 씨. 이번 주말, 도경수 이사와의 중요한 자리가 있습니다. 당신이 필요합니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내가, 어쩌다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된 걸까. 모든 것은 그 끔찍한 와인 한 잔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와인을 쏟은 상대가 하필 향준식이었다는 사실이….

“이 제안을 거절하면 어떻게 되죠?”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두려움과 호기심이 뒤섞인 감정이 묘하게 소용돌이쳤다.

향준식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의 시선은 내 얼굴을 샅샅이 훑어보는 듯했다. 마치 상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감정사처럼. 그 시선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글쎄요…” 향준식은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경고가 담겨 있었다. “편수아 씨의 회사 생활이 조금 힘들어질 수도 있겠죠. 태성 그룹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곳은, 대한민국에 없으니까.”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협박이었다. 노골적인 협박. 하지만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태성 그룹은 대한민국 경제의 거대한 축이었다. 그들의 눈 밖에 나면, 내 커리어는 끝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얼마죠?” 나는 결국 물었다. 자존심은 이미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아간 지 오래였다. 남은 것은 현실적인 계산뿐이었다.

향준식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조건은 만나서 다시 이야기하죠. 우선 이번 주말, 시간을 비워두세요. 자세한 내용은 비서실에서 연락할 겁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키는 훤칠했고, 완벽하게 재단된 수트는 그의 몸에 빈틈없이 들어맞았다. 그는 마치 런웨이를 걷는 모델처럼 당당했다. 나는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카페 문이 닫히는 소리가 텅 빈 공간에 울려 퍼졌다.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바라봤다. 씁쓸한 맛이 입안 가득 퍼져 나갔다. 마치 앞으로 닥쳐올 내 미래를 예고하는 듯했다.

며칠 후, 나는 태성 그룹 본사 앞에 서 있었다. 거대한 유리 건물은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나를 안내한 비서실 직원은 사무적인 태도로 계약서를 내밀었다.

계약서에는 빼곡한 글자들이 적혀 있었다. 계약 기간, 역할, 지켜야 할 사항들… 마치 덫처럼 느껴졌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계약서를 읽어 내려갔다. 마지막 조항에 시선이 멈췄다. ‘계약 위반 시, 위약금 10억 원.’

나는 숨을 헐떡였다. 10억 원이라니. 평생을 벌어도 모을 수 없는 돈이었다. 이 계약은 단순한 아르바이트가 아니었다. 내 인생을 송두리째 걸어야 하는 도박이었다.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내 뒤에는 아름다운 여자가 서 있었다. 그녀는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편수아 씨, 맞죠?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도경수라고 해요.” 그녀는 내민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차갑고 단단했다. “이번 주말, 잘 부탁드려요. 나의… 가짜 약혼녀 씨.” 그녀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나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뭔가 잘못됐다. 아주 크게 잘못됐다.

향준식의 다음 말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아,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요… 사실, 향준식 씨와의 계약 연애, 제가 먼저 제안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