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캔들의 규칙
Chapter 2 — 위약금 10억 원, 그 서늘한 계약
차가운 카페 안, 편수아는 도경수의 말을 곱씹으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자신의 귓가를 맴도는 ‘내가 먼저 제안했어’라는 그 말은, 마치 차가운 얼음 조각처럼 그녀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향준식의 약혼녀가, 자신에게 이 계약 연애를 먼저 제안했다고? 그것도 향준식 본인이 아닌, 그 약혼녀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믿기지 않으신다는 표정이시네요. 당연하죠. 저라도 그랬을 테니까.”
도경수는 턱을 괴고 편수아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녀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지만, 그 속에는 묘한 집착과 경고가 서려 있었다. 편수아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향준식 씨는 분명 저에게 제안했는데요. 스캔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향준식 씨가 뭘 어떻게 포장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도경수가 차갑게 말을 잘랐다. “결론적으로 당신은 그와 계약 연애를 하게 될 거고, 나는 그 자리를 지킬 거예요. 당신이 끼어들 틈은 없을 겁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어떤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오직 냉정함만이 존재했다. 편수아는 도경수의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약혼녀가 직접 나서서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걸까? 단순히 향준식과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저 향준식에게 직접 해결하라고 하면 될 일이 아닌가. 뭔가 석연치 않았다.
“그래서… 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정확히 뭐죠?” 편수아는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갈무리하며 물었다. 그녀는 도망치고 싶었지만, 도경수의 압도적인 분위기 때문에 자리에서 뜰 수 없었다.
도경수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것은 따뜻함과는 거리가 먼, 마치 맹수가 먹잇감을 보는 듯한 미소였다. “간단해요. 내 남자를… 그러니까 향준식을 건드리지 마세요. 당신은 그저 내 부탁을 들어주는 대리인일 뿐이니까. 절대로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지 마세요. 그렇지 않으면…”
도경수의 눈빛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10억 원의 위약금 따위로는 해결되지 않을 일을 겪게 될 거예요.”
그녀의 경고는 노골적이었고, 편수아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태성 그룹의 후계자 약혼녀. 그녀가 가진 힘이 어느 정도일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편수아는 계약서에 서명하기 전, 이 모든 상황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는 강한 직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되돌리기엔 너무 늦은 걸까?
그녀가 혼란에 빠져 있는 사이, 카페 문이 열리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아 씨? 여기서 뭐 해요?”
편수아가 고개를 들자, 거기에는 향준식이 서 있었다. 그는 다정한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편수아와 도경수의 냉랭한 분위기를 감지한 듯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도경수는 향준식을 보자마자 표정을 싹 바꾸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그에게 다가갔다.
“어머, 준식 씨. 마침 잘 왔어요. 수아 씨랑 잠깐 이야기 좀 하고 있었어요.”
도경수는 향준식의 팔짱을 끼며 부드럽게 속삭였다.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에는 편수아를 견제하고, 향준식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려는 의도가 명확히 보였다. 편수아는 그 모습을 보며 가슴 한구석이 저려왔다. 이것이 바로 자신이 발을 들여놓으려는 세계의 현실인가. 겉으로는 화려하고 완벽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질투와 소유욕, 그리고 숨겨진 진실들이 뒤엉켜 있었다.
“무슨 이야기요?” 향준식이 물었다. 그는 편수아의 얼굴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의 눈빛에는 편수아를 향한 걱정이 담겨 있었다. 도경수는 그런 향준식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더욱 끈적하게 그의 곁에 달라붙었다.
“별거 아니에요. 수아 씨가 혹시 우리 약혼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을까 해서, 제가 잘 달래주고 있었죠.” 도경수는 능숙하게 거짓말을 하며 편수아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편수아는 반박할 수도, 그렇다고 진실을 말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놓였다.
향준식은 편수아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무언가 의아함과 함께, 도경수의 말을 완전히 믿지 못하는 듯한 기색이 스쳤다. 하지만 그는 도경수의 팔짱을 뿌리치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그녀를 이끌며 카페 밖으로 향했다.
“이제 그만 가시죠. 수아 씨 시간도 뺏었으니, 식사라도 대접해야 하는 거 아닌가?”
향준식의 말에 편수아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초대해놓고, 오히려 자신을 곤란하게 만든 것도 모자라, 이제는 자신 때문에 약혼녀와 시간을 뺏었으니 식사라도 대접해야 한다니. 이것은 명백한 조롱이었다.
“아, 그러네. 당신이 사겠네. 뭐 먹고 싶은 거라도 있어?” 도경수가 편수아를 똑바로 보며 물었다. 그녀의 입가에는 조롱하는 듯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편수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10억 원의 위약금. 도경수의 경고. 그리고 향준식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 모든 것이 그녀를 옥죄어왔다.
그녀는 더 이상 이 상황을 견딜 수 없었다. 모든 것을 끝내고 싶었다. 편수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녀의 눈빛은 흔들림 없이, 결연했다.
“저는… 더 이상 이 계약을 진행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카페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향준식과 도경수는 놀란 표정으로 편수아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편수아는 그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의자를 뒤로 밀치며 카페를 나가려 했다. 그녀의 손이 문고리에 닿으려는 순간, 등 뒤에서 향준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지금 뭐라고 했어?”
편수아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녀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떠올랐지만, 그 눈빛은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말 그대로예요. 이 계약, 파기하겠습니다.”
그녀가 마지막 말을 내뱉는 순간, 향준식의 얼굴에서 모든 표정이 사라졌다. 그의 눈은 마치 얼어붙은 호수처럼 차갑게 편수아를 응시했다. 도경수는 그 모습을 보며 만족스러운 듯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편수아는 자신이 걷잡을 수 없는 폭풍 속으로 뛰어들었음을 직감했다. 파기 선언과 함께, 그녀의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