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길의 고백

Chapter 4 — 벚꽃 잎, 흩날리던 날의 진실

박 회장님의 말은 차가운 겨울바람처럼 동은채의 귓가에 스며들었다. 사무실 안의 공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은 듯 무거워졌다. 복현도는 여전히 그녀의 옆에 있었지만, 그의 존재감은 이제 이전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마치 거대한 폭풍의 눈앞에 선 것처럼, 동은채는 모든 것이 멈춘 듯한 순간을 맞이했다.

“회장님… 제가 왜요?”

동은채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불안감과 호기심이 뒤섞인 채, 그녀는 박 회장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날카로우면서도 깊은 슬픔을 담고 있는 듯했다. 마치 수많은 세월의 무게를 짊어진 듯한, 혹은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을 붙잡고 있는 듯한 눈빛이었다.

박 회장님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동은채의 책상 위에 놓인, 흩어진 서류들 사이의 작은 벚꽃 잎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복현도 팀장 서랍에서 그것을 발견했지.”

동은채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벚꽃 잎. 그녀가 처음 복현도를 의심하게 만든, 그리고 그의 복잡한 내면을 엿보게 했던 그 벚꽃 잎이었다. 그것이 박 회장님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그 벚꽃 잎은… 10년 전, 이곳 태성 그룹에서 열렸던 작은 행사에서 따온 것이네.”

박 회장님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동은채의 심장을 강하게 두드렸다. 10년 전. 그 짧은 시간 안에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그날, 복현도 팀장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오셨었지.”

동은채는 숨을 멈췄다. 복현도의 어머니. 그녀는 복현도의 어머니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다. 그저 그가 어머니를 그리워한다는 것 정도만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었다.

“어머니께서는… 복현도에게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부탁하고 싶어 하셨네. 하지만… 그 부탁을 하기 전, 이곳에서 벚꽃을 보며 잠시 숨을 돌리셨지. 그리고는….”

박 회장님의 목소리가 잠시 끊겼다. 그의 눈빛이 먼 곳을 향하는 듯했다. 동은채는 그의 침묵 속에서, 벚꽃 잎에 얽힌 슬픈 사연이 있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사고가 있었네.”

박 회장님의 말은 짧았지만, 그 함축된 의미는 동은채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사고. 복현도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사고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왜 복현도는 그 벚꽃 잎을 10년 동안이나 간직하고 있었던 걸까. 단순히 어머니를 추억하기 위해서? 아니면… 그 사고와 관련된 다른 비밀이 있는 것일까?

“그때, 복현도 팀장은… 어린 나이였지만, 어머니께서 내게 전하려던 말을… 그리고 그 벚꽃 잎의 의미를… 모두 알게 되었네.”

동은채는 복현도의 얼굴을 힐끗 보았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읽기 어려웠지만, 그의 눈동자 깊은 곳에는 10년 전의 슬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했다. 마치 그날의 기억이 그의 삶을 영원히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복현도 팀장의 어머니께서 내게 전하려던 부탁은… 그의 누나, 즉 나의 손녀와 관련된 것이었네.”

순간, 동은채의 머릿속에서 퍼즐 조각들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복현도의 누나. 박 회장님의 손녀. 그리고 결혼식. 모든 것이 연결되는 듯했다. 하지만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 부탁이 무엇이었는데요?”

동은채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박 회장님은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동은채 대리. 그 부탁은… 바로 복현도 팀장이 나의 손녀를… 지켜달라는 것이었네. 그 어떤 위험에서도, 그 어떤 시련에서도… 나의 손녀를 곁에서 지켜달라고.”

박 회장님의 말은 동은채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복현도가 자신의 누나를 지키기 위해, 이제 동은채와 가짜 약혼 행세를 해야 한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동은채는… 복현도의 어머니가 남긴 슬픈 약속을 대신 이행해야 하는 존재인 셈이었다.

“하지만… 왜 제가… 복현도 팀장의 약혼녀 역할을 해야 하는 거죠? 그 부탁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는데요.”

동은채는 혼란스러웠다. 복현도가 누나를 지키는 것과 자신이 그의 가짜 약혼녀가 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박 회장님은 그녀의 의문을 알아차린 듯, 희미하게 웃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오늘 동은채 대리를 직접 찾아온 이유일세.”

박 회장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동은채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의 발걸음은 무겁고도 단호했다. 동은채는 그의 행동에 긴장하며 뒷걸음질 쳤다. 복현도는 아무 말 없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침묵은 동은채에게 더 큰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복현도 팀장의 어머니께서… 나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제 동생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을 찾아주십시오.’ 였네.”

박 회장님의 눈빛이 동은채를 꿰뚫어 보듯 응시했다. 그는 동은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의 손은 따뜻했지만, 그 무게는 동은채를 짓누르는 듯했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람을 찾았네. 동은채 대리.”

박 회장님의 말은 동은채의 심장에 비수처럼 꽂혔다. 그는… 자신을 복현도의 어머니가 부탁한, 그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말인가? 왜? 동은채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복현도는 왜 침묵하고 있는 걸까. 그는… 정말로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하지만… 저는… 저는 복현도 팀장님을 잘…”

동은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박 회장님은 그녀의 말을 막아섰다.

“알고 있네. 아직은… 부족하다는 것을. 하지만… 시간이 없네. 복현도 팀장에게는… 그리고 태성 그룹에게는… 동은채 대리의 힘이… 꼭 필요하네.”

박 회장님은 동은채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마치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동은채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는 듯한, 그런 눈빛이었다.

“그러니… 동은채 대리. 나의 부탁을… 들어주게. 복현도 팀장의 곁에서… 그의 누나를… 그리고 태성 그룹을… 지켜주게. 나의 손녀의 결혼식에서… 그의 약혼녀가 되어주게.”

박 회장님의 마지막 말은 동은채의 귓가에 메아리쳤다. 복현도의 누나. 태성 그룹. 결혼식. 약혼녀. 모든 것이 그녀의 발밑으로 쏟아지는 듯했다. 그녀는 박 회장님의 간절한 부탁과 복현도의 알 수 없는 침묵 사이에서, 거대한 혼란에 휩싸였다. 그녀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복현도를 믿고 이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아니면…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도망쳐야 하는가?

그때, 사무실 문이 다시 한번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동은채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문 앞에는… 예상치 못한 인물이 서 있었다. 복현도의 얼굴만큼이나 냉철하고 아름다운, 하지만 어딘가 위태로워 보이는 한 여자였다. 그녀는 동은채를 꿰뚫어 보듯 바라보며,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그래서… 제가 필요한 거군요?”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 담긴 날카로움은 동은채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녀는… 누구지? 그리고 왜, 그녀의 등장이 동은채에게 이토록 큰 위협으로 다가오는 걸까? 동은채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멈추었다. 그녀의 눈앞에 펼쳐진 새로운 현실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위험해 보였다.